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사시(전함) (문단 편집) === 건조 === || [[파일:musashi_199ebf.jpg|width=100%]] || || 조선소의 선대에서 바다로 내려져 진수되는 무사시의 상상도. 중량을 낮추기 위해 현측에 장갑이 부착되지 않은 모습이 보인다. || 무사시의 건조계획은 [[일본]]이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군축조약]]에서 탈퇴한 후인 1936년 12월 26일, 해군 함정본부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의 최고 간부를 초청하여 건함계획인 마루 3 계획에 따라 거대전함 건조를 위해 준비를 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1937년에 개최된 제 70회 제국 회의에서 예산을 승인, 3월 29일에 계획명이 [A140-F6]에서 [제 2호함]으로 변경되었으며, 같은 해 9월 8일, 해군 함정본부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에 [A140-F6]의 정식 발주를 지시했다. 1938년 3월 29일, 예산 견적이 절충됨에 따라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기공되어 건조가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 내 민간조선소 중 약간의 확장만으로 7만톤의 거함을 건조할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이전에도 [[공고급]] 전함의 4번함 [[키리시마]](순양전함), [[이세급]] 전함의 2번함 [[휴우가]](전함), [[카가급]] 전함의 2번함 [[토사]](전함), [[아마기급]] 순양전함의 3번함 타카오(88함대의 미완성함)과 같은 여러 척의 전함을 건조해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도크에서 건조된 1번함 야마토와는 달리 무사시는 선대 위에서 건조되었기에 현측이나 주요 방어구획의 장갑을 진수식 이후 부착하는 등의 중량 경감화를 해야 했다. 또한 선체를 가리기 위해 [[종려나무]]를 대량으로 매입했는데, 이로 인해 시장에서 종려나무 가격이 급등하여 업자들의 항의가 빗발쳐 [[경찰]]에서 조사를 진행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고, 무사시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나가사키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강해졌다. 심지어 무사시가 건조중인 나가사키 조선소 쪽을 바라만 봐도 육군 [[일본 제국 육군/헌병|헌병]]들이 야단을 치거나 체벌을 가하고, 심하면 체포되기까지도 했다고 한다. 건조 당시 주민들은 시커먼 발 속에 가리어진 무사시를 귀신, [[괴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강 건너편에는 미영 [[영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무사시를 숨기기 위해서 차폐용 창고를 건설하는 등, 건조 중인 함의 모습을 추측하지도 못하게끔 하였다. 그리고 조선소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고지에 있었던 글로버 저택이나 홍콩상하이은행 나가사키 지점을 미쓰비시 중공업이 매입하기도 했다. 또한 의장원장이자 초대 함장인 아리마 카오루 [[대령|대좌]]조차도 완장을 차지 않으면 검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보안을 철저히 했음에도, 초보 제도공이 도면을 분실하는 일이 발생하거나 숙련공들도 진수대의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몇몇 사고나 문제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공사 자체에는 별 차질이 없었으며, 2년간의 함체 건설을 마치고 1940년 11월 1일 진수되었다. 진수식 때는 함체가 바깥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방공연습이라 하여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근처 일대에 육군 헌병 및 경찰관 등 600명, [[사세보]] 진수부 해병단 대원 1,200명 등을 배치하였다. 이렇게 엄중한 경계 태세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오이카와 고시로 해군 대신, 도요타 소에무 함정 본부장 등이 참석하여 진수식이 거행되었다.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도 평복을 입고 식장에 왔으며, 도착 후 제복으로 갈아입는 등의 철저한 보안 아래 진행되었다. 워낙 함체가 거대했던 탓에 중량을 줄여서 진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시가 진수되자 주위 해안에서 큰 파도가 발생했고 근처 하천의 수위가 높아져, 인근의 주택들에 [[침수]]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진수식 장면이 영상으로 기록되었으나 종전 후 소각되었다. 여담으로, 무사시가 진수된 후에도 제 1선대는 계속 종려나무로 된 발로 가려져 있어 주민들 사이에서는 무사시가 한 척 더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후 조선소에서 밤중에 발생한 화재로 발에 거대한 함선의 모습이 비춰져서 주민들이 놀라기도 했지만, 사실 발에 비친 함선은 그 옆 제 2선대에서 건조중인 개조항모 [[준요]]였다고 한다. 원래 무사시의 존재를 배수량 4만톤 가량의 전함으로 세계에 공표할 예정이었으나, 도요타 데이지로의 반대로 공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화객선 카스가마루로 가리면서 이동, 무카이지마 의장용 안벽에서 1년간 장갑 부착, 장비 탑재 등의 의장공사를 한 끝에, 1942년 8월 5일 취역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