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녀도(소설) (문단 편집) == 줄거리 == 도입부에서는 '나'의 시점에서 진행되다가 손님으로 들어온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설의 본격적으로 전개가 되는, 전형적인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먼저 '낭이'라는 인물이 그린 무녀도라는 그림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시작된 이 액자식 구성은,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으로 끝으로, 본격적인 스토리로 들어간다. 무녀도라는 그림의 분위기가 그렇듯, 이야기의 중심점이 되는 모화의 집에 대한 설명도 그렇다. 그 집은 경주읍성에서 외부로 5리쯤 가서 있는 조그만 마을, 여민촌 혹은 잡성촌이라고 불리는 마을에 있는데, 모화의 집도 인간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 집에는 [[무당]] 모화와 청각장애를 앓는 딸 낭이가 살고 있는데, 모화가 절간에 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아들 욱이를 제외하면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모화에게 [[굿]]을 하러 오는 사람들 아니면 봄, 가을에만 찾아오는 낭이의 아버지뿐이다. 그마저도 모화는 자신이 굿할 일이 없으면 주막에 가서 술을 즐겨 마시곤 한다. 그래도 매번 술을 마시고 나면 낭이에게 복숭아를 사다 주는 것으로 보아 딸에게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그 탓에 집에서의 살림을 꾸준히 하는 것은 기대하기도 힘들고, 그 곳에는 낭이만 집에 있었다. 모화의 아들 욱이가 절간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그 도깨비굴처럼 묘사된 모화의 집이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바뀌어간다. 그런데 모화는 욱이가 절간에 있다가 간만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절간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예수도([[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 때문에 욱이와 모화 간에 갈등이 생겼다. 욱이는 여동생 낭이에게 기독교 성경구절을 얘기하고 알려주는 등 기독교를 알려주지만 모화는 그런 아들이 걱정되기만 한다. 모화의 생각으로는 예수 역시 일종의 귀신이기 때문이다. 사실 무당인 모화에게 있어 예수도는 동학당과 마찬가지로 근본 없는 신흥 세력일 뿐이며, 그 종교를 믿는 아들 욱이에 대해서 미운 자식 취급을 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욱이는 그런 어머니 모화를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모화가 생각했던 것처럼 사귀들린 사람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어머니와의 성격 격차가 점차 벌어지자 욱이는 [[평양]] 현 목사와 이 장로[* 지금은 장로교회의 영향을 받아 감리교회/성결교회/침례교회/오순절교회 할 것 없이 '장로'라는 직함을 사용하지만, 당시는 지금과 다르게 '장로'라는 직함을 주는 교파가 [[장로교회]]밖에 없었다. 소설 속에서 욱이가 소속된 교파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라는 인물에게 편지를 띄웠고 [[경주시|경주]] 지방의 예수교인을 찾아 나섰다. 모화는 그러고 있는 욱이가 그저 집을 나가고 없으니 날이 갈수록 초조해져서 치성을 드리는데, 그 과정에서 낭이까지 영향을 받았는지 갑자기 옷을 전부 벗고 [[나체]]로 춤을 추기도 한다. 두 번 집을 나갔던 욱이는 어머니 모화의 포옹을 거르고 방에 누웠는데, 그날 밤 모화는 욱이가 품에 안고 있었던 <[[성경|신약성서]]>를 뺏어다가 접시불 옆에 태워 버렸다. 그것을 목격한 욱이는 불을 끄기 위해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냉수그릇을 집어들려고 했지만, 모화의 손에는 이미 식칼이 들려 있었다. 그러다가 불이 붙어서 방에까지 붙으려는 불길을 욱이가 꺼줬더니 기어이 [[칼빵]]을 먹인다. 며칠 뒤 [[순교|욱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자신을 찾아온 성직자들을 만난 뒤 성경을 품에 안고 사망한다.]] 욱이가 죽고 나서 모화가 살고 있는 집은 처음 묘사되어 있던 그대로 복귀되었고, 그와 동시에 모화는 아예 미치광이처럼 되어 버렸다. 그 결과 과거에 모화의 굿이나 푸닥거리를 빌던 사람들조차도 흉한 풍설을 퍼뜨리며[* 누구 아이인지는 모르지만 낭이의 배가 불러 있다는 풍설도 있었다. 아이를 밴 건 아니지만 욱이가 살아 있는 시점에 낭이와 욱이의 관계가 묘해졌다는 간접 묘사는 있다. "욱이가 이 지방 예수교인들을 두루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야릇하게 변해진 것은 낭이의 태도였다. 그 호리호리한 몸매와 종잇장같이 희고 매끄러운 얼굴에 빛나는 굵은 두 눈으로 온종일 말 한 마디, 웃음 한 번 웃는 일 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은 채 욱이의 하는 양만 바라보고 있다가, 밤이 되어 처마 끝에 희부연 종이 등불이 걸리고 하면, 피에 주린 싸늘한 손과 입술로 욱이의 목덜미나 가슴팍으로 뛰어들곤 했다. 욱이는 문득문득 목덜미로 가슴팍으로 낭이의 차디찬 손과 입술을 느낄 적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으나, 그녀가 까무러칠 듯이 사지를 떨며 다시 뛰어들 제면 그도 당황히 낭이의 손을 쥐어 주며, 그 희부연 종이 등불이 걸려 있는 처마 밑으로 이끌곤 했다. / 낭이의 태도가 미묘해진 뒤부터 욱이의 얼굴빛은 날로 창백해 갔다. 그렇게 한 보름 지난 뒤 그는 또 한 번 표연히 집을 나가고 말았다."가 그것인데, 낭이가 접근하고 욱이는 점잖게 거리를 두다가 집을 나간 듯하다.] 모화를 멀리하고 [[교회]] 세력에 좀 더 가까이하기 시작한다. 이로서 모화는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의 마지막 굿을 작정하고 준비한다. 이것은 예기소[* 명주실 한 꾸리를 다 푼 길이만큼 깊은 늪이라고 묘사된다.]에 빠져 죽은 김씨 부인의 넋을 달래는 것[* 모화가 사는 여민촌 마을의 저수지인 예기소는 오래 전 간통누명을 쓰고 자살한 김씨 부인의 한이 서린 곳이라고 언급된다.]이며, 이 굿으로 낭이도 입을 열 수 있게 될 거라고도 소문이 난다. 이걸 작정하고 굿을 준비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서양잡귀를 멀리 하고 굿을 가까이 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기독교 세력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오히려 모화의 초혼 굿을 외줄타기 또는 판소리 공연처럼 여겨, 전물상도 몰려오고 큰 구경을 하는 듯이 묘사가 되었다. 하지만 모화는 결국 굿을 하면서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결국 그대로 [[익사]]하게 된다. 그 뒤 오빠에 어머니까지 잃은 낭이는 한동안 앓아 누웠고 떨어져 살던 낭이의 아버지가 찾아와 그런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어느 정도 회복되자[* 이때 낭이는 아버지를 부르며 약간이나마 말을 하게 된다. 모화의 굿이 효험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부분.] 나귀에 태워져 어디론가로 가게 되고, 모화가 살던 집은 누구 하나의 관심도 갖지 않아 버려졌다. 이후 낭이와 그 아버지는 예술가를 대접해주는 '나'의 할아버지를 찾아와 한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낭이가 무녀도를 그려 남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