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기대여법 (문단 편집) == 의의 == 당시 강대국이던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은 무기대여법으로 들여온 미국의 무기를 자주 접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미국산 무기에 익숙해진 유럽의 조병창들과 군인들의 경험은 훗날 [[북대서양 조약 기구]] 창설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마디로 미국산 무기를 오래 쓰다 보니 길들여져서 북대서양 조약기구를 창설하면서 미국식 규격이 새로 도입되었지만 별 문제없이 미국식 규격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 물론 이 과정에서도 이런저런 마찰이 있어서 [[7.62×51mm NATO]] 탄과 관련된 삽질등이 있기는 했다. 전후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에 따라 피폐해진 유럽에 부흥자금을 지원하는 [[마셜 플랜]]까지 실시했으며, 무기대여법과 마셜 플랜은 전후 세계에서 미국의 입지를 새롭게 구축하는데 많은 보탬이 되었다. 미국 거시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당시 [[대공황]]의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했던 미국 경제가 이런 잉여 생산품을 모조리 외국에 처분하게 되어 대공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1950년대 미국의 활황을 만들게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연합국의 윈윈게임이었다고 할 수 있고 정확히는 미국이 조금 더 이득이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기술 교류도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T-34-76, KV-1을 소련으로부터 받아와 테스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의의는 바로 이거다: '''만약 무기대여법이 없었다면 제2차 세계 대전은 어떻게 끝났을까?''' 나치가 워낙 꽉 막힌 집단이기는 하지만 생산력 자체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연합국에 비해서는 밀릴 것이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독일군은 부족한 공업력으로도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선전했다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추축국의 실제 기본 공업력은 소련에게 전혀 밀릴 일이 없었다. 게다가 전성기 시절 추축국은 영국과 러시아의 유럽 영토 일부를 제외하면 정복과 동맹, 우호적인 중립 등을 통해 전 유럽의 자원과 공업력을 거의 다 흡수한 상황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뮌헨 협정으로 넘어간 주데텐란트.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업지대이자 무기고이기도 했다.] 물론 소련의 경우 공장설비를 포함해서 뜯어갈 수 있는 건 모조리 뜯어서 후퇴하기는 했지만 모든 설비를 뜯어갈 수 있던 것도 아니고 공장은 뜯어간다고 하더라도 지하에 매장된 자원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이는 소련의 공업력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뭐, 석탄은 탄전에 불을 붙여버리는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그 탄전이 [[센트레일리아|수백 년간 지속해서 타기 때문에 인근 지역은 수백 년간 못 쓰는 땅이 된다.]] 물론 독소전쟁에서의 독일은 그런 걸 신경쓸 리가 없긴 하지만... 다만 소련 점령지에서 독일이 얻은 이익은 다른 점령지보다는 적은 건 사실인데 설비를 뜯어간 것 뿐 아니라 인종청소를 한다고 주민들을 마구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이 비숙련공을 동원해서라도 일단 닥치는대로 찍어내다 보니, 규모의 경제에 의한 숙련에 의해 갈수록 더 나은 것이 찍혀 나오는 소련에 비해 독일의 생산효율성은 심하게 떨어졌다. 일본도 비숙련공을 동원했는데, 문제는 소련과는 달리 규모의 경제가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숙련공의 노하우에 기대해야 하는 정도가 소련보다 더 큰 데다가 결정적으로 '''숙련공은 전쟁에 밀어넣고 비숙련공은 공장에 밀어넣는''' 맛이 간 방법을 써서 갈수록 질이 좋아지기는커녕 오각형 너트가 나올 정도로 질이 더 형편없어졌다.[* 일본의 공업 능력은 당시 식민지 좀 가졌다 하는 강대국들 중에서는 가히 현대화가 늦은 이탈리아하고 비교를 해봐도 좋은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최악이었고, 규격화 역시 제로에 가까웠는데, 성능이 안 좋기로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던 [[치하 전차]]의 놀림감 대상 중 하나인 비규격화에 대해 설명하자면 '분명 같은 전차에 들어가는 엔진이 미쓰비시에서 만든 것과 하타치에서 만든 것이 호환이 되지 않는' 해괴한 상황이 계속 일어났었다. 정상적이라면 같은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엔진이어야 하는데 이 정도면 그냥 자신들이 만드는 엔진을 적당히 구겨넣은 격이다. 이런 공업 환경에서 그나마 일본의 숙련공들이 같은 규격의 무기를 일정하게 뽑아내주어, 그야말로 타국의 규격화된 공작 기계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무턱대고 알보병으로 징집해다 전장에 보내 소모하고 비숙련공을 공작 기계가 없는 공장에 마구 집어넣었으니, 품질이 나락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다. 반대로 일본의 적국이었던 미국의 [[M4 셔먼]]의 경우 체계적인 규격화에 의해 포탑 엔진 차체 등 주요 부품들이 전혀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어도 일단 호환되어 엄청난 생산성을 자랑했다.] || [youtube(ZEoiqTXvptE)] || || 거대한 화포들과 8,8cm FlaK을 생산하는 나치 독일 군수공장의 모습 || || [youtube(3tFVeTh42A4)] || || 독일의 전차 및 항공기 생산 공정 모습 || 독일은 [[독소전쟁]] 이전에 이미 [[총력전]]에 준하는 태세로 들어갔고, 소련의 광대한 영토를 점령하여 많은 자원과 공업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관료제의 부패 및 기업들의 알력 다툼 등으로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히틀러의 명령으로 [[프리츠 토트]]와 [[알베르트 슈페어]] 군수장관이 개입해서 생산체제를 혁신하면서 무기생산량이 대폭적으로 늘어났지만, 이미 연합군에게 전쟁의 주도권을 뺏긴 1944년에 접어든 시점이라서 큰 효과가 없었다. 1944년이면 이미 점령지는 다 뺏겨서 지하자원 공급이 제대로 안 되고,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물자의 운송과 생산이 방해받던 시점인데도 오히려 무기생산량은 최고치를 기록했다. 슈페어 군수장관의 개입이 있기 전까지 독일의 군수경제가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보면 쉰들러 공장에서 생산한 군수품들이 모조리 불합격 판정을 받는데도 계속 생산해서 독일군에 납품하는 것처럼 나오는데,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실제 당시 독일은 품질에 상관없이 모든 군수기업에 일괄적으로 10%의 이윤을 보장하는 병맛같은 시스템이라서 그런 해괴한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건 히틀러가 집권한 후에 당시 독일 경제를 주무르던 재벌들의 환심을 사고 현실적으로 빠른 재무장을 위해선 품질 이전에 일단 대량의 무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입한 시스템인데 이걸 총력전 상황에서도 계속 끌고 가다가 엉망이 된 것이다.[* 다만 독일은 1944년 이전까지는 말이 총력전이지 실제로는 총력전 체제로 완전히 전환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굶주리다가 내부 반발로 전쟁이 갑자기 끝나버린 1차대전의 교훈으로 히틀러가 독일인들의 생활수준을 어느 정도는 유지하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이미 연합군은 추축국 점령지를 탈환했고, 추축국 내부에서도 동맹들이 하나 둘씩 이탈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소련의 자원줄을 끊어대던 유보트 전력도 상당부분을 상실했다. 오히려 연합군 해공군에 의해 독일의 자원줄은 계속 끊기고 있었다. 공장에는 폭탄이 줄줄이 떨어지고, 장인들 역시 자원이 부족해서 예전 같은 고품질 병기를 마음대로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총력전에 동원된 비숙련공들이 만든 병기들은 품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고스란히 가져가면서도 비숙련공의 숙련화를 통한 공업효율 증가 효과는 크게 누릴 수 없었다. 결국 전쟁 후반에는 개선된 품질의 소련제 병기와 전장에서 끝없이 숙련된 소련 병사들의 힘으로 비효율적인 독일을 앞지를 수 있었다. 결국 소련의 물량에 밀린 독일이 패하기는 했겠지만 적어도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이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루스벨트의 말마따나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 소방 호스를 제때 빌려주어서 우리집까지 불이 옮겨붙지 않게 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