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골/역사 (문단 편집) === [[북원]] 멸망과 [[청나라]] 치하 === 그러나 [[15세기]] 후반부터 [[명나라]]의 입김이 약해지면서 몽골 지역은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오이라트]] 중심으로 서몽골이 통일되면서 에센 타이시에 의해 [[토목의 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에센은 칭기즈칸의 씨족이 아니라서 칸을 칭하지 못했고, 대신 그 아래 지위인 타이시를 칭했다. 이후 오이라트는 분열되어 서쪽으로 후퇴하지만 이번엔 동몽골 쪽에서 정통 보르지긴 혈통의 [[다얀 칸]]이 다시 한 번 몽골 세력을 규합해 명나라를 압박하였고, 16세기 중반 다얀의 손자 알탄 칸은 명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을 포위하기도 했다. 이것이 경술의 변으로 몽골은 다시금 일시적으로 [[허베이 성]]을 재정복했다. 그리고 오이라트는 [[준가르]]로 이어진다. 하지만 [[내몽골]]은 [[1635년]] [[후금]]의 [[청태종|홍타이지]]에게 정복당하고, 대칸의 지위도 그에게 넘어간다. 이후 후금은 [[청나라]]로 변모하였고 나라가 망할 때까지 몽골의 대칸을 겸했다. [[만주족]]과 혼인 동맹으로 종족이 일체화된 것이다. 이후 청나라는 숙적인 [[외몽골]]의 준가르도 멸망시켜 외몽골도 손에 넣는다. 청나라는 자신들의 선조였던 [[금나라]]가 몽골에게 망한 것을 상기하여, 몽골이 흥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몽골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으며, 그리하여 먼저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내몽골은 혼인 동맹 및 [[팔기군]] 합류로 일체화시키는 한편 외몽골은 반 독립지역으로 따로 놀게 놔두되 행사에 돈이 많이 들고 비폭력적인 [[티베트 불교]]를 몽골인에 장려하였다. 이 시기 청나라는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정치적 지도자로 [[젭춘담바 후툭투]](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를 선택했으며, 달라이 라마와 마찬가지로 [[환생]]하는 존재로 믿어진 젭춘담바 쿠툭투는 8대에 걸쳐 [[청나라 치하 몽골|몽골을 통치했다]]. 1대 젭춘담바는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인 자나바자르이다. 14살에 2년간 티베트로 불교 유학을 가서(1649년) 달라이 라마로부터 ‘젭춘담바 쿠툭투(Jebtsundamba Khutuktu)’라는 최고 권위의 이름을 하사받고 돌아와서는 카라코룸의 에르덴조 사원에 머물면서 몽골의 법왕으로 통치했는데, 그가 죽고 나서 환생자로 인정받은 역대 젭춘담바 쿠툭투들은 복드 칸을 포함해서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티베트인들이다.[* 훗날 [[복드 칸국|담딘 수흐바타르 시대]]에 몽골을 지배하고 있던 [[복드 칸국|복드 칸]]이 바로 8대 젭춘담바이다.] 몽골인의 첫째 아들은 라마승으로 출가해야 했다. 이후 [[러시아]]가 남하해 오면서 잦은 전투가 벌어졌으나 [[옹정제]] 시기 [[캬흐타 조약]]으로 [[외몽골]]과 [[부랴티아]]를 가르는 이 지역의 국경선이 정해졌으며, 이는 현대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으로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