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 (문단 편집) === 베트남전의 종전과 미국의 배신 === 결국 전쟁이 미군의 패배로 끝나고 1973년 완전히 철수하던 미군들은 이들을 딱히 구하려 들지 않았다. 미군의 지원이 완전히 끊어진 몽족 세력은 붕괴되었으며, 결국 공산 베트남에 의해 완전히 소탕된다. 이후 몽족은 국외로의 탈출을 시작한다. 하지만 미국이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거나 망명을 받아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남베트남이 멸망한 1975년에 미국이 인정한 몽족 망명자는 겨우 3천 명 정도. 사실상 미국과 연결되어서 반 베트남 전쟁을 벌이던 왕빠오를 비롯한 주요 몽족 지도자들만 망명이 허용 되었다고 해석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이듬해는 1만 명, 그 다음해는 다시 3만 명의 망명자가 허용되었으나, 이것도 미국의 지원 및 지시 하에 게릴라전에 참여했던 남성병사 본인에 한해서였고, 가족 단위 망명은 [[난민법]]이 성립된 80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그나마 병사 본인의 망명이 받아들여진 것도, 실제로 몽족과 같이 전쟁을 뛰었던 그린베레를 포함한 미군 참전병사들을 통한 동정론이 퍼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오히려 태국 난민 수용소에 있던 몽족들을 UN의 이름으로 라오스에 송환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미국의 배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바람에 멈추는 일까지 있었다. 당시 라오스 내부에서 몽족들이 독립하겠다고 내전을 벌였고, 공산 라오스는 그런 몽족을 학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오스와 몽족 저항군 간의 전쟁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끝이 났고, 이후로도 이들의 미국 이민은 2004년까지 금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으로 미국과 수교가 이뤄지면서, 몽족은 완전히 토사구팽당한 처지가 되었다. 한 일례로 위에 언급한 왕빠오는 이후 라오스 내 몽족 반군 지원과 베트남과 라오스 지역 몽족 자치정부를 수립하려는 반체제 활동 혐의로, '''[[FBI|미국 연방경찰]]에 의해서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당시 라오스에서 활동했던 전 CIA 요원들의 탄원으로 풀려났고 2011년 사망했다. 이런 이유로 몽족의 과반인 300만 이상은 중국에 거주한다. 본래 거주지역이 베트남은 80만, 라오스가 70만, 그 외에 미국이 17~22만, 태국이 15만 정도. 캘리포니아에서 한 한글학교가 몽족 난민을 돕고 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1550730?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