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목화 (문단 편집) === 국외 === [[미국]] [[남북전쟁]]의 원인이 된 [[흑인]] [[노예]] 해방과도 관련된 작물. 당시 미국 남부는 [[미시시피 강]] 등 주요 하천을 끼고 더운 덕에 목화 농장하기에 적합했고 남부의 농장주들은 돈이 되는 목화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이 목화농사가 노동력을 너무나도 많이 요구하기에 학을 떼고 있었다.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돈 줘도 할 사람이 없기에]] 흑인 노예를 쓰고 있었다. [[미국 독립선언서|독립선언문]]을 작성할 때부터 "모든 인류는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구절에 대해 남부 주들이 맹렬하게 반발했다.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한 초안은 대놓고 인류에 대한 범죄인 노예제를 미국에 들여온 영국 국왕을 까는 내용이 있었으나 마찬가지로 남부주 대표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에 삭제되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래의 후손들이 어떻게 하겠지" 정도의 입장이었다. 제퍼슨이나 조지 워싱턴처럼 본인이 대규모로 흑인 노예를 부리는 사례도 있었고, 개개인적으로는 흑인 노예제도를 극히 혐오했는데도 불구하고 제퍼슨은 "우리 백인의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즉 '''생존'''이라는 말이 언급될 정도로 조면기가 발명되기 전에도 흑인 노예라는 싼 노동력은 목화 산업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러나 목화가 기후에 별로 맞지 않아 담배같은 상업 농산물을 키우던 북부 주들은 임금 노동자보다 노예가 돈이 더 많이 들었기에[* '노예가 무슨 돈이 들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돈이 많이 든다. 임금만 지급하면 끝인 일반 노동자들과는 달리, 노예는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의식주를 제공하고, 노예들이 도망치지 않고 일을 똑바로 하도록 감시하는 감시원을 따로 고용하는 등의 비용이 필요했다. 당연히 이는 모두 노예 주인이 부담해야 했다.] 조면기가 발명되기도 전에 노예 해방이 진행되고 있었고, 남부 주들에서도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으나...(다수는 아니었다) 엘라이 휘트니라는 발명가가 1793년에 실용적인 [[조면기]]를 발명하면서 바뀐다. 목화를 수확만 하면 쉽게 솜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때마침 한창 [[산업혁명]]을 진행하던 영국 덕분에 목화의 수요가 넘쳐나고 있었기에 남부의 농사꾼들은 목화 재배 면적을 대대적으로 늘려버렸다. 동시에 값싼 노동력의 수요도 폭증하면서 노예와 같은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시기 목화는 미국 남부 경제에서 큰 지분을 차지했기에 "목화 왕(King Cotton)"과 같은 말이 나오기도 했다. 기술의 발전이 도리어 사회적 퇴보를 불러올 수 있는 사례의 하나. 이 때 조면기를 발명한 엘라이 휘트니와 피니어스 밀러는 남부농장주들이 특허권 따위 없애고 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기계를 표절하기 위해 낸 소송에 패배하면서 망했다. 소송 패배와 복제품의 난립으로 조면기 사업은 망했지만 엘라이 휘트니는 총기를 제조해 정부에 납품하는 일을 하여 재기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발명품인 조면기가 본의 아니게 노예제의 존속에 기여한 것과는 별개로, 휘트니 본인은 노예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출처 -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 이런 역사 때문에 [[미국 흑인]] 앞에서 목화를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큰 실례가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집트]]산 면화가 가장 유명했지만, 미국에서 목화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 애초에 목화 농업 규모 자체가 미국과 비교도 되지 않았고, 상술한 King Cotton 정책으로 미국이 목화를 무역 무기로 삼겠다고 수출을 중단한 덕에 잠시 부활할 수 있었지만, 핵심 수요처인 영국은 인도,브라질등 빠르게 대체지를 확보했고,[* 이 과정에서 인도의 소수민족 [[파르시]]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당시 성행하던 아편 무역에서 목화 무역으로 품목을 바꿔타면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남북전쟁이 끝나 미국 목화 수출이 진행되면서 원상복귀 되었다. 현재는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서구에서는 면섬유 중에 이집트 면(Egyptian Cotton)을 최상품으로 친다. 섬유가 길어서 흡습성이 좋고 질기면서도 부드럽기 때문에 고급 침구류나 고급 셔츠에 쓰인다. 역시 ELS 품종인 [[페루]] 원산의 피마 면(Pima cotton)을 미국에서 Supima라고 하여 상표화했지만 이집트 면을 더 쳐주는 분위기다. 다만 이집트에서 생산된 면은 전부 이집트 면이라고 불러버리기 때문에, ELS(extra long staple)인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집트 면이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았는데 상술한 것처럼 1950년대까지는 국산 면화가 있었고 이후 대량생산 미국산 수입 면화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국내 TV광고로 미국 면화 협회에서 "아메리칸 코튼 마크를 확인하세요"란 캠페인까지 나올 정도로 고급품 취급 받기도 했다.[* 여기에서 고급품이란 사치품이 아니라 QC가 보장되는 생산품이란 의미이다. 과거 한국 공산품에 붙던 Q마크와 비슷하다.] 1950년대 목화 수확 기계가 발명되어 효율이 50배나 증가하면서 인력으로 목화를 수확하는 일은 없어졌다. 흑인 노예 문제뿐만 아니라 [[아동학대]] 문제도 심각했다. 조면기가 나오면서 의류 공장의 수도 늘어났고 옷을 만드는 기계 또한 많아졌는데, 이것이 고장날 때마다 수리하고 조율하는 일을 하는 건 '''기계 속에 들어가 실시간으로 고칠 수 있는 작은 아이들'''이었다. 공장법으로 제약하기 전만 해도 9살짜리 아이가 8시간 넘게 일하는게 일상이었고 팔다리가 기계에 잘리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노동법으로도 아이들이 일하는 걸 막지는 못했다. 일하는 시간만 줄였지. 일본은 799년에 곤륜인이 목화씨를 왜인에게 나눠주고 재배 방법을 알려줘 각지에서 재배하였으나 1년만에 중단됐다. 그 후에는 목화면을 조선에서 수입하다가 16세기부터 미카와 국(지금의 [[아이치]]현 동부)에서 처음 재배에 성공했고, 1960년대까지는 목화 농사가 흔했다.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화학솜과 값싼 제3세계 목화에 밀려 자취를 거의 감추었다. 한반도와 달리 난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도호쿠]] 지방까지 목화 재배가 가능하다. [[유구국]]에도 문익점과 비슷한 인물로 마평형(麻平衡)[* 1577~1644. 11. 13. 화명(和名)은 기마웨카타신조([ruby(儀,ruby=ギ)][ruby(間,ruby=ま)][ruby(親,ruby=ゑ)][ruby(方,ruby=かた)][ruby(眞常,ruby=ソンジョウ)])다. 마씨(麻氏)의 시조는 보울(普蔚)로 화명이 우후구스쿠아지신부([ruby(儀,ruby=うふ)][ruby(城,ruby=ぐすく)][ruby(按,ruby=ア)][ruby(司,ruby=ジ)][ruby(眞武,ruby=ソンブ)])고 마평형은 시상(時嘗)의 셋째 아들이자 6세 종주(宗主)다. 아들은 요거(要擧)고 손자는 작원(作愿)이라고 한다.]이 있다. 일본에서 목화를 가져왔고, 중국에서 사탕수수와 고구마까지 가져와서 전파했다고 한다. 지금은 [[GMO]](유전자 조작 생물)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식물로 유명하다. 식품으로 사용하는 작물이 아니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 식물의 안전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 한몫하지만, 사실은 목화 재배의 부산물로 나오는 목화 씨에서 면실유를 추출하는데 전세계 식용유 생산 기준으로 대두에 이은 2위 생산량을 자랑한다. 단일 제품으로 팔리기보다는 주로 가공용, 혹은 혼합 식용유의 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쉽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물론 정제된 식용유에서는 유전자 조작 관련 결과가 남지 않으므로 큰 의미는 없다. [[인도]]에서는 [[중국]]산 목화씨를 싸게 사서 심었더니 전부 가짜 씨앗이어서 그해 농사를 망친 농민이 수두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시 대륙의 기상. [[소련]]은 국가별 분업화를 강조해 [[중앙아시아]]에는 오직 목화 농사만 시키도록 만들었는데,[* 우즈베키스탄의 노력영웅 [[김병화]]도 식량을 생산하다 1950년대 정부의 명령으로 목화 농사를 해야 했다.] 무작정 목화농사를 짓기 위해 강물을 다 끌어오다가 강줄기가 말라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던 [[아랄해]]는 죽음의 사막이 되어버렸고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별다른 산업기반이 없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지금까지도 경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사람들을 목화재배에 강제로 동원해서 사실상 노예노동을 시켜서 오랜기간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고 특히, 아동노동을 저지르는 바람에 수출길이 한번 막힌 적이 있었다. 참고로 한국조폐공사가 생산하는 대한민국의 지폐도 우즈베키스탄산 목화를 원료로 쓰고있다. 상술하듯이 재배가 은근히 까다로운 관계로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관계로 21세기에도 강제 노동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작물이다. 게다가 대체품이 없어서 더하고... 2021년에는 [[중국]] 정부가 [[위구르족]]에 목화 채집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2021년 신장 목화 논란|논란]]이 제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