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목동(서울) (문단 편집) == 역사 == [[강남3구]]처럼 이 동네도 처음부터 잘 사는 곳은 아니었다. 빈민운동가 [[제정구]] 전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이 지역은 1963~1965년까지 [[영등포구]] 시절 후암, 대방, 이촌 등지에서 온 철거민들이 쓰레기차에 실려져 해당 지역 갈대밭으로 이주된 곳이다. 당시 [[서울특별시장]]이던 동산 [[윤치영]]은 이들에게 "이곳만은 손대지 않을 테니 재주껏 살아보라"고 했다.[* 원 출처: <가짐없는 큰 자유: 빈민의 벗, 제정구의 삶> - 제정구를 생각하는 모임 저. 학고재. 2000. p191.] 그래서 이곳은 갈대가 뽑히고 땅이 골라져 가면서 서민들의 거주지로 변모했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아현동 등지의 철거민들이 많이 이주해 왔다. 이들이 이주한 이유는 그 지역에 시범아파트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 [[아현뉴타운]]과 [[북아현뉴타운]]이 들어서는 자리가 바로 원래 시범아파트, 시민아파트가 있던 곳이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판자촌과 둑방에 늘어선 상습 침수지역[* 개발 이전의 목동 출신인 한 교사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홍수로 집안이 침수되어 오빠와 물장구를 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채소밭, 그리고 화교 지주의 존재로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기억되었고, 신정동에 거주하는 아이들에게 목동 하면 깡패 동네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지역이었다고 하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 [[신정동(양천구)|신정동]]도 처음에는 엄청난 시골마을이었다. 목동 동네 자체가 개발 전의 [[마곡동]]보다도 교통편이 더 나빴다. 지금은 아스팔트를 깔고 곰달래길로 교통편이 생기면서 다 옛말이 되었지만. 예전의 마을 이름이 현재에도 고정 지명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월촌중학교]]와 월촌초등학교가 그 예이다. 목2동의 옛 이름이 달거리마을이였는데, 용왕산에서 떠오르는 달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동네라고 붙여져 월촌(月村)이 되었다. 이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연자방아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그러나 지나치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가 있는데, 1983년 서울시가 토지공영 개발 방식을 시도하며 목동 및 신정동 등지에 140만 평을 조성한다고 발표하자 기존 주민들이 저항했다. 원래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재개발은 서민들을 위한 주택의 대량 공급이 목적이었지만, 올림픽 재원 마련을 위해 중산층이 거주할 고급 아파트 조성 계획으로 목적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목동 주민들은 모임을 만들어 저항했으나 공권력의 초전박살식 진압으로 와해되자 이들은 양화대교까지 점거해 경찰과 대치했다.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진행된 목동 공영 개발은 2년동안 크고 작은 주민 시위를 발생할 단초를 마련했지만 저항은 실패했다. 특히 1984년 8월 이후 기존 주민들의 시위 및 농성, 그리고 당국과의 충돌이 벌어졌는데 특히 여성들이 많이 참여한 8.27 철거 반대 투쟁은 빈민 여성운동의 잠재력 및 가능성을 보였고, 1985년 1월에 시청 앞까지 유혈 농성이 벌어졌지만 힘 없는 서민들은 중산층 및 투기꾼들과 야합한 [[대한민국 제5공화국|5공]] 정권을 이길 수는 없었다. 1985년 봄 들어 서울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목동 철거민 대책을 주장하는 대자보까지 붙었지만 파급력이 약했다.[* 대신 이 과정에서 나온 용어가 '도시 빈민운동'이었다.] 결국 정부는 서민들을 무시한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현재의 목동신도시를 개발해 1990년 기준 1조 원을 챙겼다. 바로, 이 목동신도시가 '''[[목동신시가지아파트]]'''다. 목동 신시가지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방통행이다. 위에 있는 지도에서 아래쪽에 있는 오목공원(SBS 목동 사옥 바로 밑)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있는 길 두 개가 목동의 중심도로인데, 둘 다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다. 덕분에 초행자들이 접근하기가 조금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이 길보다 편한 길이 없다.[* 국내의 일방통행길은 주로 이면도로(골목)을 예상해서 불편하고 후진적인 느낌이지만, 사실 일방통행은 교통 안전 및 교통 흐름에 상당히 효율적인 체계이다. 목동 중앙(파리공원을 사이로)을 따라 각 4차선의 일방통행 도로가 있는데, 따지고 보면 총 8차선의 왕복도로인 셈이다. 이를 2+2차선 양방통행으로 만들었더라면 신호체계 등으로 교통혼잡이 지금보다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 이 길을 가다 보면 꼭 한 두 차량 정도는 역주행을 시도한다. 타 지역 사람들이 보기에 과장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오목로 쪽에서 사는 사람들은 실제로 일주일에 한 두 차례는 오목로에서 목동서로/동로의 잘못된 방향으로 진입하려는 역주행 시도 차량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마트 목동점]] 앞 사거리에서 오목로-> 목동서로 쪽으로 우회전하면 안되는곳에서 처럼 말이다. 대중매체에서 다뤄진 경우로는 가수 [[박정운]]의 5집 수록곡 '목동에서' 가 있다. [[더 클래식]] 멤버 박용준이 작사/작곡/편곡한 곡으로, 목동에 살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연락을 했지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만을 듣게 된 박용준 씨의 실제 경험담이 담긴 노래다. 목동의 부동산 중 [[목동신시가지아파트]] 1~7단지[* 신정동에 속한 8~14단지 포함.]는 모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잔금 직후부터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단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등 기타 아파트[* 속칭 '''비단지'''.]나 주상복합은 허가구역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행복주택]]이 이 곳에 들어서려고 했으나, 엄청난 반대에 시달렸고, 그 결과로 '''정치성향까지 바뀌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