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죽지랑가 (문단 편집) == 죽지랑은 누구? == 우리나라 인물사전을 보면 죽지랑이라는 인물은 없는데 대신 [[죽지]]라는 인물은 있다. [[랑]]이 이름이 아니라 인칭대명사나 존칭 내지는 호칭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죽지랑'이 아닌, '죽지'가 이름이다. 실제로 죽지는 [[김유신]]과 동시대에 화랑으로 활약하였는고로 이 향가가 지어진 시기에는 상당히 나이 든 노화랑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죽지랑이 젊었던 시절인 [[진평왕]] 시대의 일화를 가지고 효소왕 시대에 이 노래를 지었다는 설도 있다.] 여기 죽지랑의 탄생 설화 배경이 있다. >처음에 술종공이 삭주도독사가 되어 임지에 가려 하였다. >이때는 삼한의 병란이 있었으므로, 기병 3000명으로 호송하였다. 죽지령에 이르자 한 거사가 그 고갯길을 평평하게 닦고 있었다. 공이 그걸 보고서 칭찬하자, 거사는 또한 공의 위세가 매우 빛남을 좋게 여겨, 서로 마음으로 감동하였다. 술종공이 [[춘천|삭주]][* 지금의 [[춘천]]]에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나, 꿈에 거사가 방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 놀라고 괴이한 것이 더욱 심하여 다음날 사람을 보내 거사의 안부를 물었다. 그곳 사람이 말하길 “거사는 죽은 지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고 했다. 심부름 간 사람이 돌아와 그가 죽었음을 아뢰니, 꿈꾼 날과 같은 날이었다. >공이 말했다. >“아마도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난 모양이오.” >이후 술종공에게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아기의 이름을 죽지라고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