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리타니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서아프리카의 역사)] [[파일:가나 모리타니 아랍 알제리.jpg]] 왈라타 (ولاته) 유적지 고대 모리타니는 [[하마]], [[아프리카코끼리]], [[코뿔소]]가 살고 있는 초원이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사하라 사막]]의 확장으로 모리타니는 불모지가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모리타니 북부는 [[베르베르인]]들이 [[낙타]]를 끌고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 지역은 [[말리]]에도 거주하는 [[소닝케족]]의 선조격인 [[바푸르족]]도 살고 있었으나 베르베르인의 이주로 인해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1076년 [[무라비트 왕조]]가 모리타니 동남부와 말리 일대의 [[가나 제국]]을 공격해 정복했으며, 이후 아랍인들에 의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17세기 모리타니에서는 아랍계 마킬족에 지배에 대한 베르베르인의 저항이 일어났다. 베르베르인을 이끌던 나스룻딘은 아랍인들이 음악가와 주술사와 어울린다는 이유로 올바른 무슬림이 아니라 선언하며, 자신이 [[심판의 날]]에 앞서 도래하는 영도자 [[마디|마흐디]]라고 주장하였다. 나스룻딘의 무리들은 1673년 모리타니 전역을 석권하는데 성공하였으나 1년 후 나스룻딘은 전사하고 1677년에는 다시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1814년부터 [[프랑스]]가 이곳의 해안선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901년 그자비에 코폴라니는 자위야족이나 하산의 유목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트라자, 브라크나, 타간트 등을 1903-1904년까지 식민화했다. 그러나 북부의 아드라르는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고 샤이크 마 알 아이나인 등을 중심으로 저항이 있었다. 이는 1912년에 군사적으로 진압되었고, 1920년까지 이 지역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편입되었다. 프랑스의 지배 이후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유목민으로 남았지만 정주민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960년에 독립했을 때 수도인 [[누악쇼트]]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철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70년대에는 [[스페인]] 식민지였던 [[서사하라]]를 놓고 [[모로코]]와 서사하라 영토를 남북으로 분할하는 등 영토를 확장하려고 했었지만 빈약한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에 1979년에 지배를 포기하고 나머지 지역까지 모로코가 차지하는 것을 인정했다. 이 문제로 [[알제리]]와 대립하기도 했으며 1970년대엔 [[폴리사리오]]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군 병력을 1,800명에서 17,000명까지 증강했다. 이후 모리타니는 1984년에 서사하라를 독립국가로 승인했다. 독립 후, 독재자 모크타르 울드다다(Moktar Ould Daddah)는 모리타니가 서양식 다당제 민주주의에 대한 준비가 없다는 핑계로 여당을 야당과 통폐합시켜 모리타니를 일당제로 만들었다. 울드다다는 헌법을 고치고 1966, 1971, 1976년의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되어 독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결국 서사하라에서의 참패와 이로 인한 경제 실패로 1978년 7월 10일, 무스타파 울드살렉(Mustafa Ould Salek)이 이끄는 국가재건군사위원회[* CMRN, 프랑스어 : Comité Militaire de Redressement National, 영어 : Military Committee for National Recovery]의 쿠데타에 의해 실각되었다. 하지만 이 쿠데타는 오래 존속하지 못하고 이듬해인 1979년, 쿠나 울드하이달라(Mohamed Khouna Ould Haidalla)를 주축으로 한 국가구원군사위원회[* CMSN, 프랑스어 : Comité Militaire de Salut National, 영어 : Military Committee for National Salvation]에 의해 전복되었고, 처음에는 마흐무드 울드룰리(Mohamed Mahmoud Ould Louly)를 위원장으로 내세웠지만 1년만인 1980년부터 울드하이달라가 실권을 장악하고 전면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1984년 다시 무혈쿠데타가 일어나 마오우야 울드타야(Maaouya Ould Sid'Ahmed Taya)가 정권을 장악하고 장장 21년의 독재를 이어가게 된다. 울드타야 집권기인 8,90년대 내내 [[무어인]]과 흑인 간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1980년대에는 7만 명의 흑인들이 남쪽으로 추방되었고 1989년엔 모리타니 국경경비대에 의해 세네갈인 2명이 사살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세네갈]]과 국경 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후 세네갈 국경 일대에서 반모리타니 폭동도 발생했고, 모리타니의 무어인들은 세네갈 출신이나 모리타니 출신 흑인들을 공격하는 만행이 일어나는 등 2년에 걸쳐 혼란이 지속되었다. 1992년 폐쇄된 국경과 단교된 외교가 재개되긴 했으나, 모리타니에서 쫓겨난 흑인들로 결성된 모리타니 아프리카 해방군(African Liberation Forces of Mauritania)이 여전히 세네갈 북부 국경일대에 무장한 체로 존재하며 모리타니 치안에 위협이 되고 있다. 1991년 다당제 민주주의 보장하도록 개헌이 이루어져 형식상으로 모리타니는 민주화되었다. 이듬해 1992년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울드타야가 계속 집권하게 되었고, 그의 독재는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던 2005년, 울드타야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 [[파흐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파흐드]]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국내를 비운 사이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에 성공한 울드 모하메드 발(Ely Ould Mohamed Vall) 대령의 임시 군사정권은 2년간의 준비를 통해 완벽히 민주적인 정권이양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통령의 재임기간을 제한하는 개헌 등을 진행했다. 새 군사정권의 약속대로 2007년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시디 울드 셰이크 압달라히(Sidi Ould Cheikh Abdallahi)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 선거는 모리타니 역사 최초로 다중후보가 민주적으로 참여하여 이뤄진 첫 선거였다. 그러나 그가 국내 이슬람 강경파 반군과 대화를 재개하고 국부를 낭비한다는 이유로 이미 2005년 쿠데타에 참여했던 주요장교 출신이며 당시 대통령경호실장이던 무함마드 울드압델아지즈(Mohamed Ould Abdel Aziz)를 주축으로 2008년에 다시 한번 더 쿠데타가 일어났다. 모리타니의 첫 민주적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로 보이는-- 정권이 1년만에 허망하게 무너지자 많은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했다. 이후 압달라히가 대통령에서 본격 사임하고 2009년 다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재건을 공약으로 내세워 압델아지즈가 정권을 잡게 된다. 하지만 그의 공약과는 다르게 별다른 변화가 모리타니에서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2011년 아랍의 봄이 유행하며 전국적인 시위가 모리타니에서 일어나게 된다. 특히 2012년에는 암살 시도로 보여주는 총격에 당하기도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강력한 탄압으로 유명한 압델아지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82%의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한다. 이 재선을 통해 아프리카 연합(AU)의 의장을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2017년 8월 5일,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꾸고 국기를 바꾸는[* 이 전의 국기는 현재 국기에서 위아래 빨간색 띠를 제거한 형태이다. ] 개헌 국민투표가 시행되어 85%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2019년 6월 22일에 친서방 성향의 무함마드 울드 가즈와니(Mohamed Ahmed Ould Ghazouani)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0908905|#]] 그 역시 군부출신으로 2005년과 2008년 쿠데타에 모두 참여했었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직전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내고 있었다. 말이 친서방 성향이지 사실 전임 대통령인 압델아지즈와 크게 성향이 다르지 않다. 그저 직전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서방진영과 아랍진영 간의 외줄타기를 진행하며 특정한 성향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고,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을 위해 서방에 접근하는 스탠스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권은 모리타니 역사 최초로 이루어진 평화적 정권이양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2020년 8월 6일에 무함마드 울드 가즈와니 대통령은 공공행정 경력이 많은 무함마드 울드 빌랄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798028|#]] 2021년 3월, 전임 대통령인 압둘아지즈 본인과 그의 사위, 그가 집권하던 당시의 주요 정치인들이 연루된 비리 스캔들이 터졌고, 이로 인해 기소되었다. 혐의는 부패, 자금세탁, 횡령, 공공재 낭비, 부당수익, 사법 방해. 가택연금 상태로 진행되던 재판은 6월을 기점으로 본격 구속되었으나 12월 압둘아지즈의 심장수술로 인해 불구속 전환되었다. 압둘아지즈의 측근들은 이 스캔들은 현 정권이 재선을 앞두고 꼬리자르기를 위한 정치스캔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