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리세이 (문단 편집) === 솔로 활동 === 스미스의 갑작스런 해체 이후, 모리세이는 1년 가까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은둔하였다.[* 모리세이는 스미스가 그에겐 엄청난 정서적 투자였고 서약이었는데 [[조니 마]]가 갑자기 '모든게 끝났다'라고 선언했다며 조니 마를 비난했다.] 이런 그를 본 스미스의 프로듀서였던 스티븐 스트릿이 모리세이의 집으로 곡을 들고 찾아와 격려하였고 모리세이는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허나 [[조니 마]]라는 든든한 조력자 없는 그의 솔로 활동은 꽤 불안정했다. 프로듀서가 자주 바뀐 데다가 음악적 성향도 들쭉날쭉거렸다. 1988년에 내놓은 첫 솔로 음반 《Viva Hate》는 스미스 후광[* 사실 이 앨범 자체가 조니 마의 작곡스타일을 영리하게 카피한 것이다.]에 괜찮은 퀄리티로 호평을 받았다. 매니저에게서 첫 솔로 앨범이 차트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리세이는 또 잠적해버렸다. 그 다음 작품 Kill Uncle은 흑역사급의 굴욕적인 평가를 받았다. 다행히 [[데이비드 보위]][* [[데이비드 보위]]는 모리세이의 한 때 우상이었고 보위도 모리세이의 노래인 'I know it's gonna happen someday'를 커버하는 등 90년대 초반에 얼마간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그런데 보위가 90년대에 유럽투어를 할 때, 모리세이가 오프닝게스트로 투어 중 전 공연에 같이 참여하기로 약속했는데 (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여러 썰이 있지만) 모리세이가 두세번의 공연 뒤 그만두었다. 이후 사이가 멀어졌고 모리세이는 보위를 'David Showie'라고 조롱하는 등 보위가 사망할 때 까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의 [[데이비드 보위#s-2.3|지기 스타더스트]] 시절에 같이 작업했던 기타리스트인 믹 론슨으로 프로듀서를 교체하고 발표한 1992년 작 《Your Arsenal》, 1994년 작 《Vauxhall and I》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허나 1995년부터 불거진 스미스 멤버들과의 소송의 트라우마 때문에 또 나락에 떨어져 결국 소송이 끝난 1997년 이후 7년동안 음악 활동을 완전히 중지했다. 2002년 할리우드로 이주 후 발표한 2004년 작 《You Are the Quarry》[* 수록곡 자체는 02년도부터 완성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린데이]], [[SUM41]], [[blink-182]] 앨범을 만든 프로듀서 제리 핀과 작업하면서 중후하면서도 탄력이 살아있는 앨범으로 환골탈태하였다. 이전까지는 자기복제라는 굴욕적인 평가까지 받았지만 탄력있는 사운드와 그 자신의 원숙미가 더해져서 잊혀지던 커리어가 반전한 셈.]가 대박을 치면서 '역시 모리세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에 탄력을 받은건지 2006년과 2009년에도 앨범을 냈다. 미국의 촉망받는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가 이 때 2년간 투어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2007년에 모리세이를 주제로 한 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여기서 모리세이의 모습은 실루엣으로만 찍혀있는데 이것에 대해 맥긴리는 "모리세이는 그의 노래처럼 무척 신비로운 사람이다. 대단히 비밀스러운 삶을 살아온지라 아무도 그를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그런 느낌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모리세이 이전에 그와 같이 노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가사, 음악, 심지어는 무대 위에서의 몸짓까지도 온전하게 소유하고 있는 아티스트다."라고 작업 방식을 설명한 적이 있다.] 2009년 이후에는 앨범을 발매하기보다는 라이브 공연 위주로 활동했으며 2013년 11월에 라이브 앨범 & DVD/BD인《Morrissey 25 Live》를 발표했다. 2013년, 무려 [[펭귄 북스|펭귄클래식]]을 통해 자서전을 발표했다. 클래식이 아닌 원고를 클래식 라인으로 출간한다는 것에 대해 큰 논란이 일었다. 펭귄 클래식의 명성을 흐리게하는 눈먼 결정이라는 비판이었다. 이 일에 대해 [[펭귄 북스]] 측은 "모리세이가 자서전을 쓴 과정(인생) 자체가 클래식입니다 (중략) 대부분의 전설들은 죽어야 그 자리에 오르는데 모리세이는 살아 있는 동안 그 자리에 올랐으니까"라고 밝혔다. 사실 [[데이비드 캐머런|전 영국 총리]]도 [[더 스미스]] 팬일 정도로 스미스 및 모리세이가 영국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력이 크긴 하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의회 토론장에서 스미스를 언급하며 모리세이를 'My Favorite Man'이라고 지칭하기도[[https://pitchfork.com/news/66494-watch-david-cameron-misquote-the-smiths-in-parliament/|#기사]]] 2014년 초에 모리세이가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2014년 7월 앨범 《World Peace Is None Of Your Business》[* 이 앨범에 실린 동명의 곡은 '세계평화는 알아서 할테니까 니들은 열심히 일해서 세금이나 잘 내. 부자들은 더 배불러야 하고 가난한 자들은 계속 그렇게 가난한 채여야 해.'라는 풍자적 가사를 노래하는, 특정 국가들의 정부 및 빈익빈부익부 사회현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를 발매했다. 2014년 중순 갑자기 미국 투어를 취소했고, 10월에는 스페인 언론 엘 문도(El Mundo)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식도암]]에 걸렸음을 밝혔다.[[https://www.elmundo.es/cultura/2014/10/06/5431df7aca47410f278b4598.html|#원문]] 이 인터뷰에서 그는 "If I die, then I die. And if I don’t, then I don’t."라고 발언했다. 이후 2015년에는 토크쇼 '[[래리 킹]] 나우(Larry King Now)'에 출연하여 진단 당시의 심경과 현재 건강상태에 대해 밝혔고, 오늘의 건강상태를 물으니 활짝 폈다고''"Blooming"'' 대답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VuwAynfOee8|#영상]] 2015년 9월에 모리세이의 첫번째 소설 "List of the Lost"가 출간되었다. 평은 영 좋지 않은 편. [[가디언지]]의 Michael Hann은 아예 대놓고 읽지 밀라고하기도 했으며 The Daily Beast의 Nico Hines는 책 내 여성에 대한 묘사를 두고 "괴상한 여성혐오 산책'이라고 깠다. 이 비판에는 [[NME]]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소설을 두고 "혼란스럽고 종종 민망한 섹스의 조금 당황스러운 슬랩과 클리셰, 괴상하고 과장된 대화"라고 칭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17일, 열한 번째 정규 앨범 《Low in High School》를 발매하였다. 2019년 5월 24일에는 커버곡으로 이루어진 《California Son》 앨범이 발표되었다. 선공개되었던 [[https://www.youtube.com/watch?v=O3z-aureKFE|Wedding Bell Blues]]는 무려 [[그린데이]]의 보컬리스트 [[빌리 조 암스트롱]]이 피쳐링하였다. 새 커버 앨범이 발매된지 3일 만인 2019년 5월 27일 인터뷰[[http://www.music-news.com/review/UK/13785/Read|#]]에서, 이미 열세 번째 오리지널 스튜디오 앨범의 녹음을 마쳤으며 2020년 1월 발매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9월 13일 미시건에서 열린 California Son 투어 콘서트에서 '''이 공연이 나의 1,000번째 콘서트'''라고 밝혔다. [[https://www.instagram.com/p/B2X4416HuZF|영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