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란봉악단 (문단 편집) === 차영미의 기고문에서 === 2012년 첫 공연을 한 이후 단원들의 이름과 공연 동영상을 제외한다면 모란봉악단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가지면서 단원들과 악단 지도부의 로동신문 기고문은 모란봉악단에 대하여 훨씬 더 상세한 내용들을 외부세계에 알려지게 하였다. 그들의 기고문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나뭇잎을 타고 강을 건너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든다"는 식의 이른바 지도자에 대한 신격화 그리고 일방적인 찬양이지만 그러한 내용들은 빼고 그들의 악단생활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을 여기에 소개하는데 [[문화어]] 그대로 인용하였다. > 몇년전까지만 해도 나이어린 음악소녀에 불과했던 제가 오늘과 같이 예술인대회의 높은 연단에 서게 되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겨우 20대 초엽,드넓은 음악전선의 나어린 신입병사와도 같은 저를 일류급악단의 바이올린연주가로 키워주신 따사로운 사랑에 대하여 되새겨볼 때마다 솟구쳐오르는 감사의 정으로 목메이군 합니다. 동지들은 아마 기백있고 열정적인 연주,째인 안삼블,률동적인 대형변화 등으로 사람들을 황홀한 음악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저희들의 공연을 보면서 모란봉악단 배우들은 악단에 오기전부터 저런 독특한 기량을 소유하고있은것으로 생각할수도 있을것입니다. > 그러나 결코 그런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량수준과 배우생활 경험같은것이 대단히 어린 음악계의 초학도들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군 합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모여오다나니 마음의 안삼블을 맞추지 못하고 자기만 자기라고 하던 일을 생각해보아도 그렇고 높은 수준에서 편곡된 악보를 도저히 연주할수가 없어 저도 모르게 당황해지던 일을 되새겨보아도 금시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그러나 우리 악단의 연주가들이 정말로 얼굴을 붉히지 않으면 안되였을 때는 자신들이 진정한 음악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 열백밤을 패고패여도 자꾸만 시간이 모자라는것만 같아 하루에 2~3시간밖에 못자면서 기량훈련을 하고 공연준비를 완성하였습니다. 생손앓이를 하면서 바이올린을 잡았고 끝이 째져 피가 흐르는 손가락으로도 신세사이자의 건반을 짚었으며 활대를 든 채로 잠들 정도로 피곤이 몰린 속에서도 잠간 차례진 휴식시간마저 소설책을 읽고 음악감상을 하는데 바쳤습니다. 공장,기업소들을 비롯한 현실에 나가 시대의 벅찬 숨결을 실지로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그이와 함께 웃어도 보고 그이와 함께 울기도 하며 인민의 사랑을 받는 연주가로 성장해온 나날은 평범한 사람이 일생을 살아도 가질수 없는 귀중한 인생의 체험을 받아안는 영광의 시간들이였습니다. > 우리의 방마다에 써붙인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구호를 생활과 연주의 좌우명으로 삼고 보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지금보다 더 시간을 아껴 비약하자는것이 저희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며 각오입니다. -이하 중략 - 저는 바이올린을 혁명의 총대처럼 억세게 비껴들고 인생의 마지막활을 긋는 순간까지 위대한 시대 음악예술혁명의 제1바이올린수로 삶을 빛내여 나가겠다는것을 굳게 결의합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