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따 (문단 편집) ==== [[성남 일화 천마]] 시절 ==== [[포르투갈]]로 떠난 모따는 루마니아 국가대표 마리우스 니쿨라에, 포르투갈 국가대표 출신 사 핀투, 훗날 브라질에서 포르투갈로 귀화해서 국가대표가 된 리에드송, 카메룬 국가대표 두알라, 칠레 국가대표 피니야 등의 스포르팅 리스본의 각국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화려한 공격진 안에서 좀처럼 출장기회를 잡지 못하며 6개월간 5경기 출장에 그쳤고[* 포르투갈과 브라질은 같은 언어를 쓰는 비슷한 문화권이니깐 적응 실패가 아닌 실력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린 것에 가깝다.] 피스컵을 위해 전력 보강에 열을 올리던 성남 일화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미 수원에서 김두현을 영입한 상태였던 성남은 즉시, 모따 영입에 착수해 전력 강화를 마무리지었다. 모따는 비록 피스컵에서는 무득점에 그쳤지만,[* 2005년 피스컵에서 [[PSV 에인트호번]]과 [[올림피크 리옹]]을 상대로 골을 넣은 성남의 선수는 모따가 아니라 김도훈과 두두다.] 성남의 주전 공격수 [[김도훈]], [[두두]]와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고 이들을 앞세운 성남은 그해 후반기에 전반기의 부진을 훌륭하게 만회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모따는 이전 경기에서 팔꿈치 가격으로 퇴장당하며 2005년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했고 모따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성남은 울산에게 패하며 리그 우승을 꿈을 접어야 했다. 2006시즌부터 적용된 용병 쿼터 축소로 모따를 떠나보낼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모따의 재능을 높이산 성남은 모따를 잔류시키는 쪽으로 결정을 지었다. 2006시즌에서도 모따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김도훈 대신 [[우성용]]과 짝을 맞춘 모따는 우성용과도 좋은 궁합을 보이며 성남의 고공행진을 이끌었다. [[우성용]]과 모따, 두두의 활약에 지는 법을 잊어버린 성남은 미친듯한 공격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잘나가던 성남에게 비극이 일어났다. 바로 모따의 오른쪽 발목 부상. 모따는 경남전에서 김성재에게 백태클을 당해 오른쪽 발목뼈 복합골절과 발목인대 절단이라는 중상을 당했다. 성남은 모따 없이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전력의 큰 손실을 입었다. 두두를 서울로 임대보내고 이따마르와 네아가를 데려왔지만 모따의 공백을 메우기는 역부족이었고 후기리그에선 선수들의 의욕 저하까지 겹쳐 분노의 영입을 단행한 수원과 팀을 재정비한 서울에 밀려나고 말았다.[* 2006년까지 시행된 전후기 리그 제도는 전or후기리그 우승팀은 후or전기리그에서 아무리 부진해도 자동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규정탓에 부작용이 상당했다. 전기리그에서 잘나가던 팀들이 후반기만 가면 시들시들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전반기에 죽 써놓고 후반기에만 잘 해서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경우가 생긴 것. (2006년 성남은 전후기 통합해도 승점 1위였고 1234위가 나란히 플레이오프에 갔다. 오히려 2004, 2005년에 문제가 심했다.) 이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07년부터 6강 플레이오프 제도가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성남은 플레이오프에서 FC 서울과 맞붙었다. 4개월이란 긴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모따는 전반 40분, 김철호의 패스를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터뜨리며 2004, 2005년의 한을 풀었다.[* 참고로 이 경기가 [[FC 서울]]이 주장하는 '도둑맞은 챔프전 티켓' 경기이다. 서울 [[김한윤]]의 슈팅은 보는 각도에 따라선 골로 보일수도 있지만, 실제로 골라인 각도에서 본 바로는 공이 골 라인을 완벽하게 넘지 않아, 결국에 노골 선언되면서 FC 서울의 챔결 목전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성남의 결승전 상대는 [[이관우]], [[백지훈]]을 영입해 후반기 대반격에 성공한 수원. 챔피언결정전 1차전, 모따의 프리킥이 수원 수비수들을 맞고 나오자 [[박진섭]]이 바로 크로스를 올렸고, 우성용이 이정수와의 헤딩경합을 이기고 헤딩슛을 꽂아 넣으면서 성남의 1-0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대망의 2차전에서 모따는 수원의 수비진을 유린하며 2골을 작렬, 실바가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수원을 따돌리고 자신의 K리그 커리어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절망적인 부상에도 끝까지 기다려준 구단에 대한 보답이었다. 2007시즌에도 모따의 활약은 계속 되었다. A3와 아챔등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했던 성남에게 모따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A3와 피스컵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리그에서 수원에게 1-2로 패할때까지 무려 16경기 연속 무패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으로 1위를 고수하고,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4강에 진출하는데는 모따의 지칠줄 모르는 활약이 있었다. 하지만 리그 최종전에서 모따가 부상을 당하면서, 성남은 또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금방 출장할 수 있을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회복이 더뎌지면서, AFC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과 리그 챔피언 결정전 모두 모따를 뺀 채로 나가야 했고 각각 우라와와 포항에게 참패하면서, 성남은 무관으로 시즌을 마쳐야 했다. 08시즌에도 모따는 절대적이었다. 모따와 서울에서 임대 복귀한 두두를 선봉에 세운 성남은 수원의 무패 행진에 빛이 가려졌지만 가공할 공격력을 선보이며 수원을 추격했다. 하지만 후반기들어 [[이동국]], 두두 등 다른 공격자원들이 동반으로 부진에 빠지자, 모따 역시 침체에 빠지는 경우가 잦아졌다. 게다가 다혈질로 인해 자주 카드를 받으면서 경기를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고, 팀내에서도 말썽을 일으켰다. 성남의 성적도 조금씩 기울었고 결국 수원과 서울을 넘지 못하고 위로 밀려났다. 그리고 깊은 부진속에 빠진 채 시작된 6강 PO에서, 루이스를 앞세운 전북의 유기적인 미드필더진 앞에 성남은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부진의 책임을 지고 [[김학범]] 감독이 사임하고 신임 [[신태용]] 감독이 부임한 09시즌의 시작은 불안했다. 신태용 감독은 기존의 용병과 노장들을 모두 방출시키는 대대적인 팀 리빌딩을 단행했고 프렌차이즈 스타인 [[김상식(축구)|김상식]], 김영철과 08시즌 K리그 득점왕인 두두마저 팀을 떠나야 했다. 모따 역시 숙청의 칼날에 벗어날 수 없었다. 브라질로 돌아간 모따에 대해 빗셀 고베가 200만불의 이적료를 제시했다는 등 다양한 소문이 돌면서 곧 떠날것이 유력해 졌다. 하지만 모따 본인이 이적을 거부하고, 성남 전지훈련에 참가하게 되면서 모따는 계속 성남의 일원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모따는 김민수에게 거친 팔꿈치 가격을 하면서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아 한동안 그라운드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모따는 컵대회와 FA컵에서 골을 기록햇을 뿐, 리그에서는 단 2AS에 그치며 부진했다. 그리고 리그 중 당한 부상을 이유로, 성남은 모따와 상호계약해지를 단행하고 작별을 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