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성황후 (문단 편집) == 이름과 휘호(시호 & 존호 & 후호) == [[본명]]을 두고 여러 설이 있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보통 아명만 있고 이름이 없는 경우가 흔했으며, 사대부가 여인들은 간혹 이름이 있었으나 [[출가외인]]으로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 보통이어서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엄격한 남녀 구분으로 사대부의 여식 이름이 바깥 남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매우 꺼렸기 때문에 실제 이름이 있었는지 여부도 확인이 어렵다. 알려진 이름은 '''민자영'''이다. '자영'은 [[소설]]이 출처라는데 줄리에트 모리오의 《운현궁》, [[정비석]]이 쓴 《소설 민비》 등에서 나온 작명이라는 것이다. 다만 정비석은 창작이 아니고 어느 연구자의 이야기를 들은 후 적었다고 했다. 다른 이름으로 유력한 것은 '''아영'''이다. 학술 자료의 기본으로 쓰이는 《열성왕비세보 열성황후왕비세보》(列聖王妃世譜列聖皇后王妃世譜)에는 '아영'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여흥 민씨]] 집안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보니 바뀌었다"며 '아영' 대신 '자영'을 밀고 있다. 그 외에 아명은 [[항렬]]을 따른 '정호'(貞鎬)였다는 말도 있으나 여자의 경우는 남자와 다른 항렬자를 사용한 예도 있어서 확실한 증거는 없다. "아영"이란 이름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물론, 지금 태어나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널리 사용되는 것을 봤을 때 이 설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세련된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있다.] 본명이 '자영'이라고 사전에 등록된 경우가 많지만 정식 사료가 '아영'인 것으로 봐서는 별도의 학술적 근거보다는 《[[여흥 민씨]] 족보》에 따른 것으로 추정 중인데 [[왕비]]가 되고 나서 사후에 [[이름]]을 만들어 [[족보]]에 만들어서 올린 경우라고 볼 수도 있다. 휘호는 효자원성정화합천홍공성덕제휘열목명성태황후(孝慈元聖正化合天洪功誠德齊徽烈穆明成太皇后)이며, '효자원성정화합천홍공성덕제휘열목'[* 두 글자씩 떼어내듯이 읽는다]은 존호(尊號)이다. '명성'은 시호(諡號)이고 '태'는 황제의 정실 황후[* 황제는 《예기》(禮記)에 따라 2명의 황후를 둘 수 있었으나, 정후와 차비(此妃)인 측후의 위계와 구분을 엄격히 했는데, 후호(后號)는 정후(正后)만이 받을 수 있다.]인 정후(正后)만이 받을 수 있는 황제/황후 신분임을 나타내며, 황제와 황후는 같은 글자를 받는 후호(后號)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