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분 (문단 편집) == 전쟁과 명분 == 명분 중의 명분은 역시 [[선전포고]]를 위한 전쟁 명분(Casus Belli)이라 할 수 있다. [[전쟁론]]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외교 관계가 성립되고 주변국들까지 포함한 일종의 국제 질서가 형성되면 전쟁을 위한 명분은 외교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명분 없는 전쟁은 국력차가 크다 해도 승리를 보장하지 못하며,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과 같다. 외교적 문제뿐만 아니라, 명분 없는 전쟁은 자국 군대의 군인들에게 "아무 잘못 없는 나라를 상대로, 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내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만들며 [[사기(군사)|사기]]를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이는 [[항명]], [[이적행위]], [[프래깅]], [[쿠데타]], 전후 [[PTSD]]의 가능성을 높인다. 더 나아가 전쟁의 이미지가 더욱 안 좋아진 현대에는 전쟁을 하고자 할 때는 최소한 자국민들이라도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근세 이전에 일어난 대표적인 '명분 없는 전쟁'으로 [[임진왜란]]을 들 수 있다. 당시 [[김충선]]을 비롯한 수많은 [[항왜]]들이 거리낌 없이 조선으로 투항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명을 치기 위해 길을 요구한다'라는 얼척없는 전쟁 명분이었다. 이와 반대로 고려 후기 [[원나라의 일본원정]] 때의 일본은 원나라의 침략으로부터 국토를 방어해야 한다는 합당한 명분이 있었다. 그래서 [[가마쿠라 막부]]는 각지의 다이묘들을 규합해, 압도적인 국력차에도 불구하고 태풍이 덮쳐올 때까지 원나라의 침공을 두 차례나 버티는 데 성공했다. 현대에는 미국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 공격([[진주만 공습]])을 당하며 시작했던 2차대전 때에는 그 전까지는 전쟁을 반대하던 국민 대다수가 분노하여 한 목소리로 전쟁을 요구했으며, 입대를 못 했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로 온 국민이 전쟁 수행에 열정적이었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역시 [[9.11 테러]]의 복수라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국민 상당수에게 전쟁의 이유와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대대적인 반전운동과 징병기피가 벌어졌다. 결국 국력상으로 [[북베트남]]을 압도하고도 남았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이라는 명분이 있었음에도 허무한 패배를 맞이했다. [[이라크 전쟁]] 또한 실체도 불분명한 대량살상무기라는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분 때문에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한편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러시아]]는 [[돈바스 전쟁]]에 본격적인 개입을 위해'특수군사작전'이라는 명목으로 전쟁을 강행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은 기정사실로 여겨진 상태라 국가들간의 전쟁 명분은 충분했지만, 내전에 본격적인 개입이 아닌 특수작전이라는 괴상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바람에 국가가 아닌 세계인들은 명분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에 러시아 내부에서는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우크라이나에 발을 들인 [[러시아군]]은 그냥 도로 만 타고 이동하면 되는 줄 알고 쾌속으로 달리다가 서방제 재블린에 반격 당하고, 당초 계획보다 길어지면서 보급품도 부족해서 돈좌 되어 후속부대를 기다리던 공수부대들이 후퇴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초반의 졸전들은 명분 보다는 보급과 지휘 문제 였지만, 이후 징병된 러시아 병사들에게는 명분 부족이 더 크게 작용하면서 [[탈영]]과 [[항명]]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러다 보니 러시아군은 군사력 세계 2위 지위에 걸맞지 않는 졸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크라이나 측은 자신의 영토와 삶을 지킨다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확전 2일 만에 최전선인 키이우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며 자신과 내각이 우크라이나군과 생사를 함께한다고 선언하며 우크라이나군과 국민들을 독려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기적 같은 선전을 벌이는 중이며, 이에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대규모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 지원 및 군수품 지원으로 답했다. 다만 국력을 비롯한 군사력의 차이가 압도적이라면 명분 없이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 더러움과 비겁함으로 현대까지도 회자되는, 영국의 아편전쟁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명분이 마땅찮다는 점 때문에 영국의회에서 단 9표 차로 가결됐을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당시 전쟁 반대 여론을 주도했던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은 "중국이 아편을 금지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그걸 트집잡아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거냐? 세상에 이렇게 부도덕하고 추악한 전쟁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며 전쟁에 찬성하는 세력들을 규탄했다. 또한 아편 처리를 맡은 [[임칙서]]는 영국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국제법을 공부하고, 압수한 아편에 가격을 매겨 돈으로 배상하는 등 전쟁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허나 [[대영제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전포고를 해버렸고, 어쨌든 승리해 큰 이득을 쥐었다. 자세한 건 [[제1차 아편전쟁]] 문서를 참조할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