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면맥차관 (문단 편집) === 쑹쯔원의 귀국 === 8월 12일, 쑹쯔원은 제퍼슨호에 탑승하여 시애틀을 출발하였다. 제퍼슨호는 8월 25일, 요코하마에 기항하였고 일본 정부는 쑹쯔원과 회담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쑹쯔원은 회담은 물론 일본에 상륙하는 것조차 거절하였다. 8월 28일, 쑹쯔원은 상하이로 귀국하여 차관을 유치한 대영웅으로 성대한 환영을 받았고 곧바로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갔다. 9월 1일, 쑹쯔원은 베이핑 정무정리위원회 위원장 [[황푸]]와 면담을 가졌다. 황푸는 쑹쯔원에게 구미제국의 원조를 얻어 일본을 자극하는 것이 득책은 아니라고 주장하였고 쑹쯔원은 차관으로 전투기 구입이나 강철공장 설치 등 군사적 건설사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며 생산적 건설사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9월 28일, 쑹쯔원은 자신의 몇 안되는 일본인 친구인 오무라와 만나 자신의 일본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명했다. >"자신은 결코 친일을 할 수 없다. 다만 이 의미는 일본이 과거 및 현재도 취하고 있는 압박정책을 버리지 않는 한 중일의 친선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 만주사변 후 오늘까지 일본이 취하여 왔던 행동을 보면 일본은 지나를 어떻게 하려 고하는 것인지 일본의 진의를 전혀 알 수가 없다. 현재 최근의 북지 정황을 봐도 일본이 과연 지나와 협력하여 북지정리의 성의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지나가 중일의 친선을 꾀하겠는가? 어떤 시각 올때까지는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이 의견은 결코 자신 한 사람만이 아니라 아마 지나 전국을 통한 지식계급이 가지고 있는 의견이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 (...) 오늘날 중국을 구원하는 길은 경제적 건설 외에는 없고, 이 의미에서 먼저 첫째로 절대 필요한 것은 내전을 중지하고 정치상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것은 없앨 수 있지만, 군벌의 지반획득을 위한 전쟁만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9월 14일, 일본에서는 주 소련 일본대사 [[히로타 고키]]가 신임 외상에 취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