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탈(음악) (문단 편집) === 1969년 - 1970년대 중반 : 초창기 헤비 메탈의 전성기 === [include(틀:헤비 메탈의 개척자)]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P3Y8OWkiUts, height=2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8aQRq9hhekA, height=2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3SH_MbMJwxI, height=200)]}}} || || ''[[Immigrant Song|{{{#fff Immigrant Song}}}]]''[br][[레드 제플린|{{{#fff 레드 제플린}}}]] (1970) || ''Iron Man''[br][[블랙 사바스(밴드)|{{{#fff 블랙 사바스}}}]] (1970) || ''[[Highway Star(딥 퍼플)|{{{#fff Highway Star}}}]]''[br][[딥 퍼플|{{{#fff 딥 퍼플}}}]] (1972) || 1969년에서 1970년경 프로토 메탈이 본격적으로 빠른 템포와 묵직한 사운드가 특징이 되고, 음악적으로도 훨씬 그 특성이 다듬어진 장르인 [[헤비 메탈]]로 발전했다. 보통 [[레드 제플린]]의 "[[Led Zeppelin II]]"와 [[블랙 사바스(밴드)|블랙 사바스]]의 "[[Paranoid]]"가 최초의 헤비 메탈 앨범으로 평가된다. 이중에서 포크에 밀려 주류를 차지하지 못하던 [[하드 록]]을 본격적인 메인 스트림에 올려놓은 밴드는 [[레드 제플린]]이다. [[Led Zeppelin II]]는 비틀즈의 [[Abbey Road]]를 밀어내고 7주간 빌보드 1위를 기록했고, 또 현재까지 무려 2,000만장 가량이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롤링 스톤스]]와 [[더 후]]와 같은 하드 록의 대선배가 존재하였으나 그보다 더 나아간 헤비 메탈 장르에 있어서 최초로 막대한 성공을 거둔 것은 레드 제플린이었다. 이들의 음반중 가장 성공한 [[Led Zeppelin IV]]는 총 4,000만장 이상이 팔려 세계 음반 판매 순위 11위에 안착, 메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흔히 메탈로 착각하는 [[AC/DC(밴드)|AC/DC]]의 [[Back in Black]]은 하드 록으로 분류된다.] 이 곡에 수록된 [[Stairway to Heaven]]은 말할것도 없고 [[Rock and Roll(노래)|Rock and Roll]], Four Sticks, [[Black Dog]] 등 대부분의 곡들이 메탈 송의 본질을 구현한 명곡들로 평가받고 있다. 레드 제플린은 최초로 성공한 메탈 밴드로서 그 의의가 크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포크 록]]이나 [[블루스 록]]과 같은 장르들을 대부분 흡수하여 너무 실험적이지도 않으면서, 지나치게 과거에만 머물러있는 보수적인 음악을 추구하지 않고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중도적인 음악을 선보여, 헤비 메탈이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소개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레드 제플린은 단순한 음악적인 영향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악기 연주에 있어서 대부분의 메탈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친 밴드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거의 모든 보컬과 기타리스트에게 영향을 끼친 [[로버트 플랜트]][* 정작 로버트 플랜트는 레드 제플린을 메탈 밴드로 부르는것은 옳지 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들의 음악은 3분의 1이 어쿠스틱이라고.]와 [[지미 페이지]]는 말할것도 없고, 거의 대부분의 악기를 다룰 줄 알았기에 밴드의 사운드를 다채롭게 만들고 전반적으로 곡들을 다듬었던 베이시스트 [[존 폴 존스]] 역시 메탈 음악가들에게 찬사를 받는 음악가다. 한편 드러머 [[존 본햄]]은 기본적인 드럼 세트만을 이용해 화려한 연주 기교를 보여줘 메탈 드럼계에 말 그대로 '''혁명'''을 일으켰다. 레드 제플린이 상업적인 성공, 그리고 화려한 악기 기교로 헤비 메탈의 대중화와 사운드 정립에 영향을 끼쳤다면, 헤비 메탈의 이미지와 지향점을 적극적으로 보여줬던 밴드는 [[블랙 사바스]]였다고 할 수 있다. 블랙 사바스는 위에서 언급된 3개의 메탈 밴드중 가장 상업적으로 부진하였지만,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의 리프에 의한 '헤비메탈적인 압박감과 힘'을 명확하게 구현해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오지 오스본은 헤비 메탈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그 단어가 의미하는게 뭡니까?'라고 로큰롤의 역사라는 다큐에서 말한바 있다. 다만 이와 별개로 토니 아이오미는 메탈 잡지의 커버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롭 핼포드 옹하고 함께 나오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불거진 [[악마]]숭배 문제의 논란을 지핀 것도 바로 블랙 사바스. 블랙 사바스는 언제나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공연을 하곤 했고, 오지 오스본의 무대에서의 [[기행]]들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블랙 사바스의 리더인 토니 아이오미는 이후 인터뷰와 글 등에서그저 특이하게 해서 인기를 얻어보고자 했을 따름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오지 오스본 역시 솔로 앨범에서 역설적이게도 흑마술사 [[알레이스터 크로울리]]를 조롱하는 곡(Mr.Crowley)을 만들기도 했다. 이 후 익스트림 메탈에서 이런 측면을 사상적으로 체계화하지만 시작은 그냥 상업성 추구였다. 오지 오스본의 행동도 똘끼+상업성이 결합한 측면이지 사타니즘 자체에 근거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후일 거의 모든 메탈 밴드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헤비 메탈"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블랙 사바스가 거의 모두 다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블랙 사바스는 70년대 활동 당시에는 항상 비교 되는 두 밴드에 비해 음악적 구성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 점은 8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90년대를 넘어가면서부터 후대의 평가는 달라졌다. 꾸준히 한 길만을 걸었던 [[토니 아이오미]]의 노력으로 블랙 사바스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헤비메탈의 모범이 되었다. 그들의 반복 리프에 대한 활용은 헤비 메탈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고, 어둡고 [[마술]]적인 분위기는 먼 훗날에 익스트림 둠 메탈이나 고딕 메탈, 데스 메탈 등의 극단적인 후발주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텃밭이 되주기도 하였다. [[딥퍼플]]은 [[이언 길런]]의 영입 이후 1970년에발표한 IN Rock 앨범부터 존로드의 헤비한 해몬드 올겐과 [[리치 블랙모어]]의 극한의 한계까지 가는 화려하고 공격적인 기타 플레이, 그리고 전무후무 했던 이언 길런의 스크리밍 창법등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하드록/헤비메탈의 교과서로 불리우게 된다. 이들의 영향력은 80년대 NWOBHM 밴드들에게 그대로 계승되며 80년대 말 스피드메탈, 스래쉬 메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외에도 스테판울프, 블루 치어, [[제프 벡]] 그룹 등의 밴드들 역시 1970년대 헤비 메탈에 큰 영향을 미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별로 누가 최초의 메탈 밴드인지에 대한 의견이 갈린다. 미국 측에서는 [[레드 제플린]]을, 영국 측에서는 [[블랙 사바스]]를 각각 최초의 메탈 밴드로 밀어주는 편이다.[* 미국에서 [[레드 제플린]]의 인기는 자국에서보다 더 높았다. 미국 역대 음반 판매량 순위 5위가 [[Led Zeppelin IV]]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메탈 밴드 1위의 자리에도 종종 오를 정도.] 다만 두 나라 모두 양측 밴드가 거의 동등하게 기여했다고 보는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