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문단 편집) == 관광 == 통일 이후 이 곳의 지역 공영 방송은 [[북부독일방송|북부독일방송(NDR)]]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니더작센이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와 함께 저지독일/북독일 문화권적 동일성은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메클렌부르크 지역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도 북부독일방송의 전신인 북부방송(Nordische Rundfunk AG, 약칭은 NORAG)의 가청권에 들어갔다. 다만 포어포메른 지역은 오늘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방송]]의 전신인 Funk-Stunde Berlin의 가청권이었다. (당시 힌터포메른 즉 포메른 동부는 [[동프로이센]]의 동부방송(Ostmarken Rundfunk AG) 가청권)] 위의 외국인 혐오와 관련된 몇몇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 지역에도 볼거리는 매우 많다. 하지만 아직은 대외적으로 널리 홍보하지 못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은 해변 리조트아니면 이미 널리 유명한 [[슈베린]]과 [[비스마어]] 정도. 대부분은 독일 내국인 관광객들이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은 역사 및 문화 유적을 중점으로 여행을 해도 좋으며, 발트해 연안에 펼쳐진 해변과 유명 리조트들에서 장기 숙박을 하며 해수욕, 낚시 등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14px-Schwerin_Castle_Aerial_View_Island_Luftbild_Schweriner_Schloss_Insel_See.jpg]] 슈베린 성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슈베린 성이다. 본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의 궁성으로, 원래는 방어 목적으로 서기 973년 슈베린 호수에 있는 섬에 위에 지어졌다. 이후 증축과 여러 르네상스 및 바로크 개축을 거쳐 지금의 로맨틱 양식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동독 시절 때 관리가 영 안되었던 걸 통일 이후 복원을 하였고 지금도 일부 복원 작업 중. 성 자체도 매우 특출나지만, 넓직한 정원과 호수를 비롯한 주변 경관도 매우 아름답다. 현재는 성의 절반정도가 주 의회의 의사당으로 쓰이고 나머지 절반은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어있다. 메클렌부르크 대공작과 그 가족들이 살던 방들과 응접실, 왕좌실, 예배당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북쪽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지만, 이는 현대에 붙어진 것이다. 슈베린 성은 실제로 10세기 이후로 공작 가문 대대로 거주하고 통치하던 성이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9세기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의 기행으로 무리하게 과시용으로 짓다가 완공도 못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해외에 [[서독]]에 있던 백조의 성이 매우 유명해졌고 슈베린 성은 [[철의 장막]]을 벗어난 통일 후 뒤늦게 세계에 다시 알리려다보니 관광업계에 의해 이런식으로 불리는 것. 역사와 미술사적으로 본다면야 슈베린 성이 훨씬 더 으뜸이다. 슈베린 성 정문 바로 앞 다리 건너에는 17, 18세기 10만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주립 박물관이 있다. 본래 1882년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이 설립한 것으로, 지금은 슈베린 성, 루트비히스루스트 궁, 귀스트로 성과 주 정부의 소유가 되었다. [[노이슈트렐리츠]] 시에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의 쌍둥이 제후국이던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의 궁전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끝물인 [[1945년]] [[4월 29일]] 밤 화재로 사라졌다. 그나마 [[https://en.wikipedia.org/wiki/File:Schloss_Neustrelitz_Ruine_1949.jpg|잔해가 남아있었지만]] [[동독]] 정권은 봉건주의 잔재를 청산한다며 완전 철거해버려 정원만 남았다. 다행히 통일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베를린]]의 프로이센 왕궁처럼 복원이 진행중이긴 하나, 주정부에서 벌이는 복원 사업도 많은데 궁전 규모도 엄청 컸던지라 복원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것으로 예상되다보니 후순위로 밀리는 중. 전쟁으로 사라지기 전에는 [[https://gutshaeuser.de/var/gutshaeuser/storage/images/gutshaeuser/schloesser/schloss_neustrelitz/50562-7-ger-DE/neustrelitz_lightbox_2012.jpg|이렇게]] 생겼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Wismar_Kraemerstrasse.jpg]] 비스마르 시내 [[비스마르]]와 [[로스토크]], [[슈트랄준트]]는 [[한자동맹]] 시대부터 유명한 항구 도시이다. 비스마르와 슈트랄준트는 구시가지 시내의 정비와 관리가 잘되어있고, 두 도시 모두 구시가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로스토크는 공업화가 많이 이루어졌던 도시라 2차세계대전 때 폭격을 심하게 받아 역사적 의미의 구시가지는 일부밖에 보존되지 못하였다. 드레스덴의 구시가지 복원 사업의 성공사례로 인하여 이 지역에서도 꾸준히 구시가지 복구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귀스트로]]는 메클렌부르크 공작령이 두 지역으로 분할 되는 과정에서 메클렌부르크귀스트로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그 당시에 공작의 궁전으로 쓰인 귀스트로 성 규모가 상당히 크다. 북독일의 바로크-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과 넓직한 정원이 인상적. 슈베린 남쪽 30km에 위치한 [[루트비히스루스트]]는 18세기 말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이 잠시 천도를 했던 곳으로, 공작이 살기 위해 지은 바로크 양식의 루트비히스루스트 궁전이 위치해있다. 본래 매우 조그만 다른 이름의 마을이였으나 천도와 함께 계획적으로 도시를 설계하고 짓기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루트비히스루스트 궁은 2016년 현재 대대적인 내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나 복원된 일부 방과 화려한 연회홀은 입장하여 관람할 수 있다. 슈베린과 비스마르는 함부르크 광역권으로 분류될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기 때문에 여행을 할 계획이라면 함부르크를 거점으로 당일치기 여행으로 다녀와도 충분하다. 그 외의 지역은 로스토크를 거점으로 삼던가, 함부르크에서 로스트크를 거쳐 베를린으로 간다는 계획으로 여행하며 거쳐갈 수도 있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 버려지거나 방치된, 과거 귀족들이나 다른 지역 왕족들이 지었던 저택들(Herrenhaus)이 많이 남아있는데, 최근 들어 일반인들이 이런 저택들을 사들여서 손수 수리하고 복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