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릴랜드 (문단 편집) == 역사 == 대략 기원전 10,000년 경에 메릴랜드 지방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의 유럽인 탐험가들은 [[알곤킨]] 어족과 약간의 서스쿼해노크 족들을 찾았다. 알곤킨 어족은 촙탱크, 난티코크, 패턱센트, 포토바고와 위코미코 족을 포함한다. 미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식민지 [[버지니아 주]]와 붙어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개발되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메릴랜드의 영주는 캘버트 가문이었고 더 자세히 말하자면 캘버트 가문 가주의 사생아인 헨리 하포드(Henry Harford)의 소유였다.[* 이때 사생아인 헨리 하포드는 아버지의 재산만 물려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볼티모어 경 직위는 결국 소멸되었다.] 미국 독립전쟁 때는 영국 본토에 있어서 화를 면했고 독립전쟁 뒤에 배상을 요구하며 미국에 소송을 걸었다. 하포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며 제발 약간의 배상금이라도 달라고 요구했고 메릴랜드 주 사람들 다수가 그를 안쓰럽게 생각했다. 하포드는 독립전쟁 당시에 청소년이라서 전쟁 책임을 묻기도 어려웠고, 그가 요구한 배상은 1771년부터 1776년까지의 토지 임대료였다. 한마디로 독립 이전까지의 토지 임대료만 요구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쓰러워하면서도 영국 식민지의 지주가 배상을 받는 전례를 남기면 안된다고 결심하고 그에게 단 한푼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큰 반전이 있었으니... 사실 하포드는 그 당시에 영국 본토에도 엄청난 재산이 있었다. 애초에 1700년대 들어서 캘버트 가문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의 소득과 비교되지 않는 큰 재산이 영국 본토에 있어서 아메리카로 가지도 않았던 것이다.[* 잉글랜드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에 수십만 파운드에 달하는 엄청난 재산이 있었고 큰 장원도 있었으니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없는 최상위층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하포드는 영국 정부를 상대로 40만 파운드의 배상금을 받는데, 이는 애초에 그가 예상한 10만 파운드와 실제로 요구한 33만 파운드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그 이후에도 하포드는 잘 먹고 잘 살았다. [[워싱턴 DC]]는 메릴랜드가 연방 정부에 양도해준 땅에 세워진 도시다. 원래 워싱턴 DC는 포토맥 강 하구에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의 땅을 미 연방 정부가 양도받아 정사각형 마름모 꼴로 만든 도시인데 후에 강 남안의 알링턴 지구는 다시 버지니아에게 반환하면서 메릴랜드에게 양도받은 부분만 남았다. 미국 독립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미국 남부]]에 속했으며, 노예제를 허용한 주 중 하나였다. [[남북전쟁]] 당시 볼티모어 등을 중심으로 남부 지지파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북부 편에 섰으며, 전쟁 기간 동안 주요한 전장이 되었다. 아나폴리스도 전선에 너무 가까워 [[미 해군]]이 해사를 임시로 이전시켰을 정도다. 여전히 포토맥 강 건너 [[버지니아 주]]와 함께 남북부를 가르는 주요한 지점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