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머시아 (문단 편집) == 머시아 백작령 == 머시아 왕국이 망한 후에 머시아는 백작령이 되었다[* 크누트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잉글랜드에는 이교도 대군세 때의 4왕국(노섬브리아, 머시아, 웨식스, 동앵글리아)이 부활해 백작령이 되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작위로는 [[웨식스 백작]]이 있다.]. 초대 백작은 레오프리치(Leofric)인데,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레이디 고다이버]]의 남편 리어프릭이다. 그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웨식스 백작 다음으로 강한 제후였다. 2대 백작은 레오프리치의 아들 앨프가르(Ælfgar)가 이었다. 그의 대에 웨식스 백작 고드윈과 [[참회왕 에드워드]]의 대결이 있었는데, 일시적으로 패배한 고드윈 일가가 앨프가르의 영토로 망명해왔다. 이때 앨프가르는 고드윈의 아들 [[해럴드 2세|해럴드]]의 작위인 동앵글리아 백작을 얻었다. 이후 고드윈이 에드워드와 화해하면서 다시 해럴드가 동앵글리아 백작이 되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고드윈이 죽고 해럴드가 웨식스 백작이 되면서 동앵글리아는 다시 앨프가르에게 귀속되었다. 앨프가르는 1055년 추방당했고, 아일랜드에서 18척의 배를 이끌고 웨일스에 상륙해 귀네드와 포위스의 왕 그리퍼드 압 허웰린과 동맹을 맺었다. 둘은 브리튼인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쳐들어갔고, 에드워드의 명령을 받은 해리포드 백작 겁쟁이 랄프(Ralf the timid)와 맞붙었다. 랄프는 이 싸움에서 참패했고, 앨프가르는 랄프의 영지를 들쑤시며 온갖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다. 이후 에드워드가 웨식스 백작 해럴드를 앞세워 토벌군을 조직하자 힘에 부친 앨프가르는 다시 웨일스로 도망쳤다. 그러나 재차 침략해올 것을 두려워한 에드워드는 앨프가르를 복권했고, 그는 다시 머시아 백작이 되었다. 앨프가르가 죽자 3대 백작으로 에드윈(Edwin)이 뒤를 이었다. 에드윈의 형은 모르카르(Morcar)였는데, 노섬브리아 백작 토스티그가 학정을 펴자 모르카르가 노섬브리아 백작으로 추대되었고 토스티그는 스코틀랜드로 도망쳤다. 토스티그는 노르웨이 왕 [[하랄 3세 하르드라다]]에게 사주해 잉글랜드로 쳐들어왔다. 에드윈과 모르카르는 요크 인근에서 벌어진 풀포드 전투에서 참패해 요크를 내주었지만, [[해럴드 2세]]가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그들을 죽였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윌리엄 1세]]가 해럴드를 죽였다. 이때 에드윈과 모르카르는 참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둘은 머시아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윌리엄이 이를 눈치채고 먼저 행동을 취하자 굴복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로 망명을 떠났는데, 1071년 그를 따르던 노르만족 수행원들이 배신해 살해당했고, 그가 다스리던 영토는 알랭 르 루(Alain le Roux)라는 이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이를 끝으로 머시아는 역사에서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