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머시아 (문단 편집) == 몰락 == 내전이 종식되자 '''코앤울프'''(Coenwulf)가 머시아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펜다의 여동생과 웨식스 왕 첸왈흐의 자손으로, 펜다와의 혈연적 연관성을 들어 왕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무리한 귀네드 왕국 원정으로 국력이 크게 쇠진했고 '''베오른울프'''(Beornwulf) 왕 치세에 엘렌둔(Ellendun)전투에서 웨식스의 에즈베르흐트(Ecgberht, [[에그버트]]) 왕에게 크게 패했다. 이시기 머시아의 왕위는 잦은 내전으로 왕조가 자주 바뀌었는데, 현대 사학자들은 이 왕들이 이름 앞글자를 따 C왕조, B왕조, W왕조라고 칭한다. 코엔울프의 즉위로 인해 정통 이켈 왕가가 대가 끊겨버리자 차기 왕위를 두고 이 세 가문이 나라가 망하는 870년대까지도 아주 박터지게 싸우게 되는데,[* 다만 W왕조는 중간에 대가 끊겨서 C왕조에 흡수된다. ] 결국은 C왕조가 상처뿐인 승리를 거두기는 한다. 한편 이시기 왕좌의 게임에 참가했던 이 세 가문 모두 앵글로색슨 연대기는 어쨋든 이켈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즉 모계던 부계던간에 어쨋든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머시아 왕가의 일원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첫번째는 이 기록을 최대한 존중해 세 가문 모두 펜다와 이켈과 어떤 식으로든 혈연적 연관성이 있으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9세기 초부터 벌어진 일련의 왕좌의 게임들이 머시아 왕가라는 거대한 친족집단 내에서 벌어진 정통성 싸움이라고 본다. 한편 다른 학자들은, 이 세 가문이 머시아 왕가와 그다지 혈연적 연관성이 없으며, 본래 각지의 토착 귀족들로서 왕가의 대가 끊어진 이후 왕위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인 것이라 본다. C왕조의 경우 웨식스 왕가의 후손임이 거의 확실하나 동시에 펜다와 혈연적 연관성도 부정되지는 않으며, W왕조는 혈연적 연관성이 있을수도 있으나 이 입장의 학자들은 대부분 부정하며, B왕조의 경우에는 혈연적 연관성이 없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전쟁의 결과로 머시아는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을 모조리 상실하면서 머시아는 웨식스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위즐라프'''(Wiglaf)의 지휘 아래 머시아는 주권을 회복했지만 865년 [[이교도 대군세]]라 불리는 [[데인#s-1|데인족]]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노팅엄을 빼앗기면서 왕이 강제 퇴위당했고, 내분과 바이킹의 침공에 약화되던 머시아는 결국 870년 후반 데인족에게 왕국동부가 강제 분할당했다. 머시아 왕국의 마지막 왕인 '''체올울프(Ceolwulf) 2세[* 체올울프 1세의 아들 ]'''는 머시아를 879년까지 통치했다. 하지만 그가 서거한 후, 2년간의 내전 끝에 '''[[애설레드]]'''(Æthelred)가 즉위했지만 머시아는 그 시기를 거치며 더 이상 독립 왕국이 아니라 웨식스의 종속국으로 전락했다. 애설레드는 바이킹의 침공에 위협받는 룬덴([[런던]])을 공격했고, 귀네드의 왕인 아나라우트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웨일스에 대한 지배권을 복구하기 위해 콘위 전투를 벌이는 등 머시아의 부흥을 위해 힘썼다. 또한 910년에 즉위한 여군주 '''[[애설플래드]]'''(Æthelflæd)[* 웨식스의 명군인 [[앨프레드 대왕]]의 딸이기도 하며, 이는 머시아의 왕권이 이미 웨식스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데인족들과의 기나긴 전쟁을 통해 데인족들의 지배하에 놓였던 머시아와 동앵글리아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918년 바이킹과 전쟁을 벌이던 와중 목숨을 잃었다. 이어서 여군주인 '''[[앨프윈]]'''(Ælfwynn)이 즉위했으나 반년 후 선왕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머시아는 결국 [[웨식스]]에게 병합되었다. 그 이후 머시아의 왕위는 웨식스의 왕이 겸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애설스탠]]'''은 웨식스의 왕이자 머시아의 보호자라 칭했다. 그 이후론 별로 언급되는 바가 적은데 955년 '''[[이드위그]]''' 왕 치세에 잉글랜드 왕국이 3개로 분열되면서 '''[[에드거 1세]]'''가 잉글랜드의 북부 머시아 일대를 959년까지 독단적으로 통치했다. 그리고 [[이드위그]] 왕이 서거하고 잉글랜드의 왕위를 이으면서 머시아는 다시 잉글랜드로 병합되었다. 그리고 1017년 [[크누트 대왕]]이 정복할 당시 머시아 북부를 받아냈다는 1049년의 기록을 끝으로 언급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