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맨박스 (문단 편집) ==== 남성은 악하지 않다, 단지 그게 옳다고 잘못 믿을 뿐 ====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남성이 본질적으로 악하다거나 여성을 괴롭히고 싶어한다거나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들이 길거리의 여성에 대해 자기들끼리 [[음담패설]]을 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이 마음 속으로 여성을 악독하게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닐 수 있다. 단지 그런 대화 속에서 혼자 끼지 못하면 동료 남성들에게 "에이, 남자들끼리 이런 말도 못 하냐?", "너 혹시 [[게이]]냐?" 같은 배척을 겪게 될 것이 두려워서 (즉 맨 박스에 위협을 느껴서) 함께 즐기는 척하는 것일 수 있다.[* 물론 정말로 즐기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저걸 즐기는 분위기가 자신이 속한 사회환경 내애서 고착화되어있고, 해당 사회환경 소속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저런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남성들의 경우 사화 속에서 배척당하지 않고 존속되는 상태를 유지하고자 이에 맞춰준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그 여성에 대해 존중해 주고 싶은 남성들조차, 그 여성을 멸시하고 타자화하는 "남성들만의 세계" 에서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소속감의 문제는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옳지 않다고 이성이 판단한다 해도 소속되지 못하고 배척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 등으로 사회 내에서 폐단을 답습하거나 폐단을 묵인하는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샐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조직이 아무리 썩어있다 쳐도 이를 만천하에 드러내려는 [[내부고발자]]가 조직 내에서 나오기가 매우 힘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그로 인해 정말로 악한 남성이 여성을 해코지하며 활개 치고 다녀도 신속히 그 사람을 제지하거나 처벌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좋든 싫든 다 같이 여성을 억압하는 풍조에 기여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수의 남성들의 선의가 결국 여성의 고통이라는 파국을 낳는다는 것. 저자는 다섯 살짜리 아들에게조차 "너는 집안의 가장" 이라고 말하고, 한참 나이가 많은 누나에게는 "네 동생이 집안의 가장" 이라고 말하는 것이 결국 그 누나에게 의존성을 심어주게 된다고 경고하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부모의 마음이 실은 딸의 앞길을 가로막고 그녀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아들을 의젓하게 키워주고 싶어서라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특히나 아버지들은 아들을 남자다운 남자로 키워내는 것에 일종의 사명의식 비슷한 것을 갖고 있으며, 아들이 남성성을 드러낼수록 아버지는 흐뭇함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동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에 저자 본인조차도 일상 속에서 아차 싶을 때가 많다고. 여성 문제에 대해 남성이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이유 역시 저자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10살 전후로 배우게 되는 태도는 다음과 같다. '''1)''' 여자애들의 삶과 경험, 느낌에 대해서는 관심을 꺼라. '''2)''' 단, 성적인 관심은 어떤 경우에든 허용된다.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서 여러 메시지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남성이 [[섹스]]의 기회가 왔는데도 거절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것이다", "남성이 성적인 목적 없이 여성과 '그냥 [[친구]]' 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친 또는 아내와의 섹스에 있어서 여성이 뭐라고 느끼는지에 신경쓰지 않는 것은 남자다운 것이다" 등등이 있다는 것. [* 종종 남성들이 연애관계 상황 등에서 여성들의 싫다는 말을 온전히 싫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속으론 좋아하면서 튕기는 거임' 하는 식으로 오해 - 확신하는 경향성을 드러내는 건 여기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결과 남성들은 지금껏 그렇게 자기 앞일만 보면서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결과를 두고 저자는 [[오토파일럿|자동운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저자는 여기서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선량하게 살아오고 여성들을 존중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맨 박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이들은 자신이 배운 대로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 왔다. 이렇게 살아가는 남성들이 모이고 모여서, 어느 순간부터 여성들이 억압받게 되는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다. 선량한 다수의 남성들은 이것이 올바르지 않음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문자 그대로 "착하고 평범한" 선량한 남성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비록 가해자를 특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 역시 간접적으로 이 악한 사회구조를 유지시키는 데 공헌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라도 하자는 게 저자의 요청이다. 자신이 옳다고 배워 왔던 남성성, 즉 맨 박스가 우리 모두를 오도하는 위험한 메시지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그저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들은 대체로 선량하기 때문이다.[* 이 의견에 대해 선량하다는 것에 대해선 부정해도 대체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가해자와 지배자, 착취자의 입장에 서려는 경향성을 지니지는 않았다는 것까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성이 원래 호의적이고 선량한 선까진 아니더라도 원래부터 남성이란 존재가 여성을 무조건적으로 지배하고 억압하며 착취하려는 존재는 아니라는 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