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튀 (문단 편집) == 피해 == 가해자에겐 장난일지 몰라도 피해자에게 큰 수치심을 주는 [[성추행]] 행위이다. 길면 수십년 가는 상처다. 과장이 아니라, 아주 어렸을 때 당한 사람도 이때의 수치심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고 하니 말 다했다. > 고등학생 때였나, 어쩌면 뭔가 내키지 않고 자신도 없는 어떤 입시를 준비했던 중3 때였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주말 훤한 대낮인 걸로 기억합니다. 공부하러 독서실에 걸어가는 길은 다니는 사람도 많은 여느 여름날과 다르지 않았지요. > 한창 또래의 여학생들이 흔히 그러듯 말로는 '다이어트 해야지'를 입에 달고 지냈지만, 사실 외모 꾸미기엔 별로 관심도 재주도 없어 반바지인가 긴 면바지인가에 반팔 박스티를 헐렁히 걸쳐 입고 아마 백팩을 멘 채, 대로변을 지나 독서실이 있는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건물 입구에 들어서는데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그냥 누가 지나가나 보다' 혹은 '독서실로 들어오는 사람이겠거니'하고 별 신경 쓰지 않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뒤에서 두 손이 내 앞으로 다가와 내 양 가슴을 힘껏 움켜잡았다가 후다닥 달아났습니다. > > 난데없이 가슴을 기습적으로 움켜잡힌 직후 난 이게 무슨 일인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온몸이 멎은 순간이 조금 지난 뒤, 돌아서서 달아나는 그를 저도 모르게 쫓아 달리고 있었습니다. 재미없는 구식 범생이던 저는 운동 신경도 없고 단거리 달리기는 특히 느려서, 그 스포츠머리의 낯선 남성(아마도 저보다 단지 몇 살 많아 보였지만)이 작정하고 도망치는 걸 쫓아갈수록 물리적 거리는 좁혀지기는 커녕 점점 더 멀어질 뿐이었습니다. 나름으론 최선을 다해 달리면서, 마음 다급한 와중에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잡기는 어렵고 잡더라도 그다음에 뭘 어쩔 수 있을지도 모르니 도움을 청하자 싶었어요. > 하지만 만일 "치한이야!"라든가 "성폭력범이야!'라고만 외친다면 [[방관자 효과|길 가던 사람들이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광경과 저만 구경거리나 호기심거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 > (중략) > > 결국 그 순간엔 이런저런 답 없는 고민만 하며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고이 접힌 우산을 들고 조용히 달리기만 했네요. 결국 당연하게도 그놈은 영원히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 > 허탈하고 놀란 채 집에 오니 부모님이 제 낯빛을 보고 자초지종을 묻고 놀라서 독서실에 같이 쫓아가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말이 되느냐며 따지고, 여학생이 마음놓고 다닐 수 있게 건물 주변 관리 잘 해달라 주의를 요청해주고, 저는 그날 오후 내내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 >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고 깊이 화가 나는 것은 놀랍게도, 난생 처음 타인으로부터 원치 않게 가슴이 만져진 순간의 놀람과 충격과 몸에 남은 더러운 느낌보다도 '그냥 어떤 놈이든 지가 맘만 먹으면 그 누구(어떤 타인 여성)몸이든 함부로 침범할 수 있는 거였다니'하는 충격적이고 불쾌한 깨달음이었습니다. > 차라리 내게 무슨 원수라도 져서 갚으러 온 것이었다면 그나마 같은 인간끼리나 될 텐데! 아, 저 사람에게 나는 어떤 대등한 인간 주체도 못 되는구나, 나라는 특정인에게 어떤 특별히 미운 사연이 있어서도 아니고 누가 됐든 지나가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어떤 여자 가슴'이면 됐던 거구나! > 마치 내 몸은 아무것도 아닌, 죽어 잘린 고깃덩어리같이 취급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놈을 놓치고 황망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 지나는 여자들이 갑자기 하나같이 위태하며 언제 어떻게 무방비로 만져질지 모르는 고깃덩어리처럼 보였던 이상한 기분이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이 와중에 같은 날 저녁 먹은 뒤엔 부모님이 제게 무심히 "독서실 안가?"라고 묻고, 아까 일이 기억나지 않느냐며 기막혀하는 제게 "그 일은 그 일이고"라 답하여 저를 또 야속케 하기도 했습니다. > > (중략) > > 어떤 때는 길을 걷다 맞은편에서 내 쪽을 향해 오는 남성만 보아도 그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저도 모르게 몸이 위축되고 방어적으로 긴장해 있는 걸 깨닫습니다. 이런 거슬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몸의 기억은 다시금 더욱 짙어졌습니다. 피해 내용과 몸의 부위도 다른데 제 몸의 기억은 어쩌면 이렇게 오래전의 장면을 다시금 생생히, 매순간 길어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 수많은 만화에도 인터넷에도 넘쳐나는 이미지들이지만 아마 가해자는 까맣게 잊고 지낼 그 장면에, 잊고 싶어도 떨칠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 ---- >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0701|링크(삭제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