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만주 (문단 편집) === '''[[유목]], [[반농반목]] 및 [[수렵채집민족]]''' === 만주의 원주 민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다. 내만주 지역은 청나라와 만주족의 발상지인 만큼, 현재도 2천만 명가량의 [[만주족]]이 존재한다. 또한 흥안령의 옛 동4맹 지역의 경우 몽골계 민족의 대표인 [[몽골인|몽골족]]과 [[다우르족]]등이 거주한다. 러시아 지역에는 극소수의 퉁구스계 민족 [[윌타족]], [[오로치|오로치족]], [[울치족]] 등이 거주한다. 이 지역 또한 본래는 내만주와 같이 북방 민족들의 영역이었으나 [[러시아 제국]]이 외만주를 중국으로부터 획득한 이후 [[표트르 스톨리핀]]의 러시아인 이주 장려로 러시아인들이 유입되고 [[이오시프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원주민들이 상당수 강제이주되면서 인종 구성이 바뀌었다. 중국과 러시아 양측에 걸쳐있는 민족들은 [[에벤키족]](어원커족), [[나나이족]]이 대표적이다. 나나이족은 중국에서 허저족이라고 부르며, [[연해주]]에 대부분 거주하는 [[우데게족]]들도 일부는 중국에 있으며, 이들은 허저족과 만주족으로 분류된다. 헤이룽장성 북부에는 [[어룬춘족]]도 거주하는데, 일부 어룬춘족 역시 러시아에 거주하기도 하며, 러시아에서는 오로치족으로 분류하여 오로치족에 포함시킨다. 다만 현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주류민족인 [[한족]]과 [[러시아인]]이 이들을 밀어내고 주류를 점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서만주의 일부인 내몽골 동부의 흥4맹도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현재는 모두 소수민족이 됐다. * '''[[퉁구스어족|퉁구스계(숙신계) 민족]]''' * '''[[만주족]]'''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가 이끌던, 반농반목을 하던 건주 여진 일파의 직계 후손. [[금나라]]의 멸망 이후에도 만주의 가장 외곽에 있었기에 동화를 피할 수 있었던 생여진 일파는 몽골 제국의 붕괴를 틈타 차츰 다시 남진하여 요동 반도 근처까지 다시 내려왔다. 그 중에서도 중국 및 조선과 가깝고 농업이 가능했던 건주 여진 부족들은 두 국가에 복종하고 협력하며 차츰 힘을 길렀고, [[임진왜란]]과 [[만력 3정]]을 계기로 조선과 명나라가 약화되자 그 기회를 틈타 성장했다. 그리고 17세기 초부터 [[후금]]과 [[청나라]]를 세워 일부 야인여진을 제외한 건주, 해서 여진을 [[팔기군|팔기 제도]] 아래 통일하곤 만주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다만 여진족이 곧 만주족인 것은 아니었다. 팔기 제도 하에 편입된 주민들, 일명 '기인'들은 여진인과 몽골인이 다수이긴 했으나 조선인, 한족, 심지어는 극소수이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계 알바진인 출신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여타 한족과 분리된 구역에서 독립된 문화를 영유했으며, 팔기 제도가 보장하는 특권으로 뭉침으로써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들은 17세기 초반부터 명나라를 침공하여 중원을 차지한 뒤 티베트, 몽골, 신장과 만주 전역의 광대한 영역을 20세기 초까지 300년간 지배했다. 당시 만주족은 청나라의 독점적 지배민족이었지만 점차 한족의 입김이 강해졌으며, 서세동점의 19세기를 버텨내지 못하고 1911년의 [[신해혁명]]으로 멸망했다.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부터는 일개 소수민족이 됐으며, 일본의 만선사관에 이용되어 만주국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기도 했다. 현재도 천만명 가량이 남아 있으며 50% 가량이 [[랴오닝성]]에 거주한다. 하지만 한족에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분리된 생활을 유지했음에도, 현재는 대부분이 한화되어 중국인에 동화되어 있다. 본인들이 만주족이라는 사실은 자각하지만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크며, 민족 언어인 [[만주어]]는 사멸 직전인데다 주급 이상의 민족 자치 지역을 보유하지도 않고 있다. 민족 종교는 [[만주 신화]]를 기반으로 한 샤머니즘, 그리고 [[티베트 불교]]이다. * '''[[시버족]]''' [[퉁구스어족]]의 [[시버어]]를 사용하는 수렵민족. [[랴오닝성]]과 [[지린성]]의 및 [[헤이룽장성]]의 남부에 거주한다. 또 청나라 시기에 서북 국경 방위를 위해 강제 이주된 일파가 저 서쪽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차부차얼 시보 자치현]]에도 존재한다고. 스스로를 [[선비족]]의 후예로 여긴다. 이들의 언어인 시버어는 만주어의 한 방언이기 때문에, 현대 들어서는 사멸 위기인 만주어를 재구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민족 종교는 샤머니즘과 [[티베트 불교]]이다. * '''[[나나이족]]''' [[퉁구스어족]]의 [[나나이어]]를 사용하는 수렵채집 민족. 중국에서는 허저족으로, 러시아에서는 나나이족이라 부른다. [[흑수말갈]]의 후예로, 청나라의 발흥 당시 북동 국경을 방위하는 임무를 받아 [[헤이룽장성]]에 남았던 야인 여진 부족의 직계 후손이다. 이 때문에 [[나선정벌]] 당시 [[조선군]]과 만나기도 했다. 주로 어업과 채집을 통해 생활하는데 어업이 주된 산업이다. 물고기 껍질로 의복을 만들어 입을 정도. [[러시아 제국]]의 외만주 점령 당시 일부가 러시아 지배 하에 들어가면서 현재는 중러 양국에 분할되어 있다. 민족 종교는 애니미즘 신앙이다. * '''[[어웡키족]]''' [[퉁구스어족]]의 [[어웡키어]]를 사용하는 민족. 주로 [[싱안링 산맥]] 및 내몽골자치구 북동부 일대에 거주한다. 지역별로 생활양식이 유목부터 수렵채집까지 다양하다. 세 갈래로 나뉘는데, 쑤어룬 어웡키족은 전체 어웡키족의 80%를 차지하며 유목에 종사한다. 퉁구스 어웡키족은 러시아 혁명 당시 러시아령 시베리아에서 넘어온 이들이며, 순록 유목에 종사한다. 마지막으로 야쿠트 어웡키족은 시베리아에서 넘어온 [[야쿠트인]]들의 후손으로 가장 원시적인 수렵채집 및 순록 유목에 종사한다. 샤머니즘과 [[티베트 불교]] 또는 [[러시아 정교]]를 믿는다. * '''[[오르촌족]]''' [[퉁구스어족]]의 [[오로첸어]]를 사용하는 민족. 주로 [[싱안링 산맥]]에 거주한다. 대실위의 후손들로, 명나라 시기에는 야인 여진의 일파로 취급됐으며 청나라에서는 색륜부의 일파로 분류하며 만주 팔기에 소속시켰다. 삼림에서 수렵을 통해 생활하며, 종교는 주로 토속 샤머니즘을 믿는다. * '''[[오로치|오로치족]]''' [[퉁구스어족]]의 민족. [[러시아]] [[하바롭스크 지방]]의 해안 지역과 [[사할린]], [[일본]] [[홋카이도]]에 거주한다. 매우 극소수로 이미 민족어인 오로치어는 사멸했으며, 주로 러시아어를 쓴다. 일본에서는 아예 소수민족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 '''[[우데게족]]''' [[퉁구스어족]]의 민족. 러시아 하바롭스크 지방과 연해주에 사는 수렵채집 민족으로, 나나이족과 생활양식이 매우 비슷하다. * '''[[윌타족]]''' [[퉁구스어족]]의 수렵채집민족. 러시아 사할린, 일본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극소수 거주한다. 나나이족과 매우 유사하다. * '''[[울치족]]''' 하바롭스크 지방에 거주하는 [[퉁구스어족]]의 수렵채집민족. 나나이, 윌타족과 매우 유사하다. * '''[[몽골어족|몽골계(동호계) 민족]]''' * '''[[몽골족]]''' [[몽골 인민 공화국]], 그리고 [[내몽골자치구]]를 기반으로 거주하는 유목 민족이다. 만주와 내몽골의 몽골인들은 [[몽골어족]]에 속하는 [[몽골어]]를 사용하지만,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몽골국의 동족과는 달리 여전히 [[몽골 문자]]를 사용해 표기한다. 만주 지역에는 서부의 3시 1맹 지역과 [[랴오닝성]]에 주로 거주한다. 실위 계통, 그 중에서도 몽올실위 부족들이 대정복자 [[칭기즈 칸|보르지긴 테무진]](칭기즈 칸)의 강력한 권위를 통해 뭉쳐 생겨난 집단이다.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지배층으로 전 세계를 정복했으며, 이후 몽골 제국이 각 씨족의 영지로 분화될 때 만주 지역에는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옷치긴]]의 후손들인 [[동방 3왕가]]의 울루스들이 자리잡고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 중 테무게 옷치긴의 울루스는 싱안링 산맥과 아무르 강에서 한반도 북부에 달하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기에, 대칸의 울루스인 [[원나라]]도 함부로 하기 힘들었다. 조선 왕실의 시조인 [[목조]] [[이안사]] 또한 옷치긴 울루스에 항복했고, 그 밑에서 천호장으로 지내며 세력을 키웠다. 원나라의 몰락 이후에는 몽골 고원으로 돌아가 [[북원]]의 지배민족으로 명나라와 대립했고, 청나라 건국 당시에는 다수의 몽골 부족들이 만주족에게 원나라의 옥새를 넘기고 만주 팔기에 소속되어 중원 정복에 동참했지만 청나라에 저항한 부족들도 다수 있었다. 그렇기에 청나라는 친청 부족들을 묶어 [[내몽골]]로 규정, 높은 지위를 보장하며 청나라 황실과 통혼시키기도 했으나, 반란 분자들은 [[외몽골]]로 분류하여 별도로 관리했다. 근현대 들어서는 외몽골이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독립한 반면, 내몽골은 여전히 중국의 일부로 남아 있다. 민족 종교는 [[티베트 불교]]이다. * '''[[다우르족]]''' [[몽골어족]]의 [[다우르어]]를 사용하는 민족. 주로 [[내몽골자치구]]의 북부와 [[헤이룽장성]]에 넓게 퍼져 거주한다. 청나라 강희제 시기 국경 방위를 위해 이주된 일부 집단의 후손들은 저 서쪽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국경지대에도 거주한다. [[거란족]]의 후예로 강력히 추정된다. [[요나라]]의 멸망 이후 대다수는 중앙아시아와 이란으로 향해 [[서요]]를 세우거나 중국에 남아 몽골과 한족에 동화됐지만, 대하씨 부족으로 대표되는 일부는 북방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했다. 그들의 후손이 바로 다우르족이다. 근세에는 만주 팔기에 소속됐지만 북방 국경 방위를 위해 남았고, 그 때문에 독립된 민족집단으로 남을 수 있었다. 수렵과 유목을 하지만, 친척뻘인 몽골인과는 달리 농사 또한 잘 짓는다. 종교로는 주로 토속 샤머니즘 신앙을 믿는다. * '''[[고립어(비교언어학)|고립어]] 사용 민족''' * '''[[아이누]]''' 홋카이도 북부 및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족으로, 고립어인 [[아이누어]]를 사용한다. 고아시아 인종으로 분류되며 크게 홋카이도 아이누, [[쿠릴 아이누]], [[사할린 아이누]]로 나뉜다. 일본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민족이지만 바다를 통해 외만주 지역의 수렵 민족들과도 교류하며 문화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지녔었다. 퉁구스계 말갈족 해양민들의 일파가 전래한 오호츠크 문화가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홋카이도 아이누는 농경을 일부 했으나 대다수는 수렵채집으로 생활했는데, 특히 어업과 해달 사냥이 주된 생활 양식이었다. 아이누 신화로 대표되는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을 믿는다. [[조몬인]]의 직계 후예이며, 원래는 혼슈 동부에도 분포했으나 일본의 시조인 [[도래인]]계 [[야요이인]]들의 성장에 따라 일본 동북방으로 점차 밀려났다. 일본 조정이 이들을 [[에미시]]라 부르며 토벌군을 보내었기 때문. * 홋카이도 아이누들은 홋카이도가 [[마츠마에]] 번을 통해 일본의 경제권에 간접적으로 편입되면서 일본인들의 침략을 받게 됐고, 19세기 일본 제국의 성립에 발맞추어 [[홋카이도]]가 최초의 식민지로 편입되면서 이들도 강제적으로 동화됐다. * [[사할린 아이누]]는 오호츠크 문화를 흡수한 아이누인들이 사할린으로 진출하며 생겨난 집단이다. 청나라 지린성에 속해 있었으나, 근대 러시아와 일본의 사할린 지배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탄압당했다. * [[쿠릴 아이누]]는 그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 때문에 집단의 형성 시기가 사할린 아이누보다도 늦었다. 어업과 해달 사냥이 사실상 유일한 생활 양식이었으며, 러시아와 일본의 탄압으로 인해 현대에는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 '''[[니브흐]]''' 고립어인 [[니브흐어]]를 사용하는 수렵채집 민족으로, 북사할린과 외만주의 [[아무르강]] 하류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아이누와 직접적으로 부대끼며 영향을 주고받았던 민족이다. 중국 동북과 러시아 극동의 이웃 퉁구스인들과 매우 유사한 생활상을 보이며, 주로 어업에 종사한다. 러시아와 일본의 사할린 지배 과정에서 수가 격감했다. 민족 종교는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