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시미아누스 (문단 편집) ==== 카라우시우스의 난 ==== 막시미아누스의 활약으로 갈리아는 평온을 되찾았지만, [[도버 해협]]에 인접한 갈리아 북부 해안 지역은 여전히 프랑크 족과 색슨 족으로 구성된 해적들에게 고통받았다. 막시미아누스는 이 해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벨기에에 살고 있던 갈리아의 메나피족 출신의 로마 군인 [[카라우시우스]]에게 해적 소탕을 명령했다. 카라우시우스는 나름 일을 잘해 286년 무렵에 해적선을 대량으로 포획했다. 그런데 막시미아누스는 얼마 후 뜻밖의 정보를 입수한다. 카라우시우스가 프랑크, 색슨 해적이 도버 해협을 통과해서 노략질을 하도록 내버려둔 뒤 그들이 재물과 포로를 싣고 돌아가려 할 때 출동해서 해적들을 소탕하고 재물을 모두 빼앗아 원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듬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중범죄였고, 막시미아누스는 그를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카라우시우스는 자신이 처형될 거라는 걸 눈치채고 휘하 함대와 일부 야만족 용병들을 이끌고 브리타니아로 피신했다. 그는 브리타니아에서 로마에 충성을 바치는 일부 로마군인들을 숙청하고 브리타니아를 장악한 후 스스로를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로 자칭했다. 막시미아누스는 이 반란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함대가 없었고 마침 헤룰리족과 프랑크족이 갈리아에 침입했던 터라 카라우시우스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한편 카라우시우스는 그의 함대를 강화하고 프랑크족 출신 용병대를 징집하고, 휘하 군대에게 막대한 재물을 나눠줘 절대적인 충성을 확보했다. 이후 그는 갈리아 북부와 도버 해협을 통제하고 자신의 모습을 새긴 동전을 주조했다. 289년, 막시미아누스는 마침내 함대를 갖추고 브리타니아 침공을 개시했지만 실패했다. 공식 기록에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함대가 침몰했다고 적혀 있지만, 카라우시우스는 자신이 군사적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막시미아누스가 브리타니아 제국 평정에 실패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는 당분간 카라우시우스를 건드릴 수 없었다. 이후 막시미아누스는 291년 1월 메디올라눔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만나 카라우시우스 문제를 의논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현실을 인정하고 카라우시우스를 황제로 공인하라고 권유했던 것 같다. 막시미아누스는 어쩔 수 없이 카라우시우스와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그의 브리타니아에서의 종주권을 묵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