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시미아누스 (문단 편집) === 최후 === 310년, 콘스탄티누스 1세는 프랑크족이 라인강을 도하해 갈리아를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친히 출정했다. 이때 그는 막센티우스가 남쪽에서 쳐들어올 것을 우려해 막시미아누스에게 일부 병력을 맡겨 아를에서 수비하게 했다. 그런데 막시미아누스는 아를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전사했다며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 막시미아누스는 모든 병사들에게 뇌물을 줬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콘스탄티누스 1세에게 충성을 바쳤고 그의 행위를 배신으로 간주했다. 결국 군대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막시미아누스는 아를을 떠나야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콘스탄티누스 1세는 프랑크족과의 전투를 중단하고 재빨리 남하했다. 막시미아누스는 마실리아에 숨었고 콘스탄티누스 1세의 군대는 마실리아를 에워쌌다. 마실리아 주민들은 막시미아누스보다는 콘스탄티누스 1세를 따르는 쪽을 선택하고 막시미아누스를 넘겨줬다. 막시미아누스는 콘스탄티누스 1세로부터 강하게 규탄받은 뒤 310년 7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버지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막센티우스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동전을 주조하고 아버지의 헌신적인 아들로서 복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막센티우스와 격돌하는 기간 동안에는 막시미아누스를 반역자로 단죄하고 그의 이름이 담긴 모든 비문을 파괴하며 그의 얼굴이 담은 초상화를 없앴다. 하지만 312년 10월 28일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전사시킨 후에는 막시미아누스를 복권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