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걸리 (문단 편집) == 여담 == * 공장제가 아닌 수제 막걸리를 빚어서 보관할 때는 흙으로 빚은 [[옹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원칙적으로 막걸리를 판매하지 않는 주점에서 단골 손님에게 막걸리를 판매할 경우에는 인근 편의점 같은 데서 막걸리를 사서 대접한다. 단가는 소위 '싯가'이다. * 소주, 맥주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전인 60~70년대에 한국의 대학가에서는 막걸리가 주로 소비되고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부터는 소주, 맥주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https://www.yna.co.kr/view/GYH20100706000200044|#]] * [[고려대학교]]가 막걸리로 유명하다. [[고려대학교/응원가#s-1|그들의 공식 응원가]]를 개사한 [[막걸리 찬가]]가 있으며, [[고려대학교/응원가#s-4.4|막걸리나]]라는 곡도 있는 등의 막걸리 관련 [[노래]]들이 있다.[* [[버스커 버스커]]가 부른 [[윤종신]] 원곡의 '막걸리나'와는 전혀 다른 노래다.] 매년 들어오는 신입생도 즐겨 마시는 술이다. * [[서민]] 및 중장년, 할아버지들이 주로 즐기는 술로 알려져 있지만, [[높으신 분]]이 막걸리 취향인 경우도 많다. 사실 높으신 분들 중에도 처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난게 아니라 서민으로 시작해서 신분상승한 경우가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그게 아니라 진짜 금수저였더라도 그저 취향이 막걸리인 경우도 존재한다. 예컨데 서양의 경우엔 와인 문화권은 높으신 분들이나 서민이나 다 와인을 즐겼고, 맥주 문화권도 높으신 분들이나 서민이나 다 같이 맥주를 즐기는 등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술을 즐기는 문화가 보편적이였다. 물론 상류층은 일부러 진귀한 수입 주류를 즐기기도 했고, 사실 같은 술을 마신다고 해도 상류층이 마시는 술이 더 질 좋은 술이라는건 부정할 수 없긴 하지만, 애초에 술은 그 지역에서 가장 구하기 편한 재료의 술 외 다른 재료로 만든 술은 귀하다보니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술을 마시는건 당연한 현상이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단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김종필]]의 회고록에 따르면 막걸리를 마시는 걸 좋아했고, 그의 다른 측근 고건 전 총리 역시 양주와 막걸리를 선호했다고 회고한다. 매달 막걸리를 몇 말씩 [[청와대]]로 정기적으로 배달시켜서 먹었을 만큼 막걸리 [[매니아]]였고 또 각 지역을 순방할 때마다 그 지역 막걸리를 맛 보았다고 한다. 재밌게도 이 습관 덕에 본인이 실시한 양조 통제 정책으로 인해 사라질뻔한 산성막걸리를 마셔보곤 바로 지원하여 되살린 병주고 약주고 일화도 있다. 특히 일명 [[막사#s-2]]라고 해서 사이다와 섞어 마시는 것도 상당히 즐겼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인 [[이낙연]]도 유명한 막걸리 애호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막걸리 애호가였는데 그의 경우엔 2005년 경에 [[단양군]]에 왔을 때 앉은 자리에서 대강막걸리 양조장의 '오곡 막걸리' 여섯 잔을 연거푸 마셨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 이후 대강양조장 막걸리는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돼 공식 만찬에 200여회나 사용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노 전 대통령께서 우리 양조장 막걸리를 참 좋아하셨어요. 거의 매일 청와대에 막걸리가 들어갔죠. 그쪽에서 내일부터 넣지 마세요 하면 외국 가시는구나 했고 내일부터 다시 넣어주세요 하면 한국 돌아오셨구나 했죠. 퇴임하신 뒤에는 봉하마을로 꾸준히 들어갔어요."라고 대강양조장 조재구 대표는 전하기도 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34600|#]], [[https://www.khan.co.kr/travel/national/article/201912131348001|#]] * 정치인들 외에 막걸리를 좋아하기로 유명했던 인물로는 시인 [[천상병]]을 들 수 있다. 늘 일정한 직업도 수입도 없었던 천상병은 친한 지인들에게 수시로 돈을 걷어 막걸리를 사서 마시는 것으로 소일하곤 했다. 하루는 연세대의 [[김동길]] 교수가 그런 천상병을 딱하게 여겨서 양주인 [[조니 워커]] 한 병을 선물하기도 했으나, 결국 조니 워커를 팔아서 다시 막걸리를 구입해 마셨다고 한다. 천상병 사후인 2017년, 인천 강화도 건평항에 그를 기리기 위해 막걸리잔을 든 채 웃고 있는 천상병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새벽마다 출몰해서 몇 개월 동안 동상이 들고 있는 막걸리 잔에 실제 막걸리를 따르고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 [[고무신]]과 함께 1950~60년대에 선거 때 후보들이 유권자들에게 뿌리던 대표적인 물품이었다.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국민이 [[선거]]로 뽑는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것이었고, 정책을 알아보고 후보에 표를 주는 건 더욱 생소했다. 따라서 후보들이 일종의 [[뇌물]]을 뿌리면서 자기들 뽑아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농경국가였고 국민들 대부분이 농촌에 있으므로 농민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이나 [[고무신]]을 돌리며 누구누구 뽑아달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후보가 지역 주민에게 [[뇌물]]을 뿌리는 행위가 금지된 건 2000년대 이후였다. * [[개소리|말같잖은 소리]]를 들었을 때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흔히 오래된 과거 시절을 얘기할 때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을 쓰는데, 비슷한 의미로 "[[곰]]이 막걸리 거르던 시절"도 있다. * 먹고 남은 막걸리를 처리할 때 쓰이는 방법이 [[술빵]] 만들기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반죽한 후 발효시켜서 찜통에 넣고 쪄내면 완성되는 비교적 간단히 만들 수 있다. 가끔 교통 체증이 심한 곳에서는 어디선가 [[군것질]]들을 파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술빵도 파는 메뉴 중 하나다. * [[백종원]]은 가짜 밀맥주를 만드는데 막걸리를 활용했다. [[레몬]] 1조각에 막걸리 2+일반 맥주 8을 섞으면 그럭저럭 맛이 비슷한 가짜 밀맥주가 탄생한다고 직접 만들었다. 사실 실제로 밀 막걸리와 밀 맥주는 재료가 많이 비슷하다. 단지 제조 공법과 그 외 재료들의 차이로 다른 술이 될 뿐이다. * 2016년에는 [[동아대학교]], [[원광대학교]]에서 [[신입생]]들을 집합시켜놓고 막걸리를 뿌리는 [[똥군기]] 사건이 연속으로 발각되면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막걸리 버킷 챌린지]]가 유행이라고 비웃음 당하고 있다. 우습게도 이런 막걸리를 뿌리는 짓거리는 오히려 옛날에는 없었다가 최근 들어 만들어진 악습이다. [[선배]]들도 안 하던 짓거리를 [[후배]]들이 하면서 선배들의 체면에 똥칠하고 있는 것이다. * [[충남대학교]]에 가면 막걸리 동산, 일명 막동이 있다. 현재는 중앙도서관 남서쪽 잔디밭이지만, 원래 자리는 후문 옆에 있는 작은 공원을 가리켰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후문 옆 솔밭(현재는 사라졌으며 공동실험 실습동과 위치가 일부 겹침)이 막동이었다. 막걸리와 안주로 먹을 두부김치는 서문 건너편의 이모네, 고모네, 계룡식당 등에서 사와서 마셨다. 날씨 좋은 날에 가보면 친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신문지 깔고 막걸리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주점이나 일반음식점에서 소규모로 술을 만들고 팔 수 있게 법이 바뀌면서, 요즘에는 수제 막걸리도 보인다. [[배상면주가]]에서는 '''동네방네 막걸리'''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이 도심에 양조장을 만들면 막걸리를 만드는 방법을 지원하고 있다. [[공덕동]][* 실제 양조장은 [[대흥동(서울)|대흥동]]에 있다. 대흥동 중에서도 [[염리동]]과의 동 경계에 위치한다.], [[성수동]], [[의정부시|의정부]], [[소요산]], [[탄금대]], [[상당산성]], [[보문산]], [[금오산]], [[서초동]], [[고잔동(안산)|중앙동]] 막걸리 등이 출시되었다. * 군대에서는 [[6.25 전쟁]] 직후 즈음부터 1977년 중반까지 막걸리를 [[PX]]에서 일반 사병들에게 판매하기도 했었다. 포장된 제품으로 판매하는 게 아니고 주기적으로 군용 물탱크 트럭이 [[PX]]에 와서 [[드럼통]]에 퍼다 주는 추진을 했었다. 당시 이등병 기준 월급이 1,250원이었는데 막걸리를 커다란 플라스틱 바가지 한 [[되]](약 1.8ℓ)에 담으면 85원이었다. 그 당시 짜장면 한그릇이 138원이었다. 현재시세로 따지면 저 1.8L에 2,000원 정도인 셈이다. 그래서 당시 이틀에 한번꼴로 막걸리를 마실 수 있었으며 막걸리 장사는 PX가 들어서있는 부대 대대장의 부수입이기도 했다. 이때 막걸리를 각 대대 PX에 추진하던 수송부 트럭 운전병 사병은 막걸리 일부를 슬쩍 가로챈 뒤 강가에 트럭을 세우고 막걸리가 든 물탱크에 물을 타서 정량을 맞추는 비리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안주는 [[웨하스#s-2|크라운 웨하스]]가 잘 나갔다고 하며 쌀막걸리가 부활하면서 150원으로 폭등하였을 때 아우성이 대단했다. 77년 이후로 막걸리 판매가 중단되면서 대대장은 소주 장사로 가외 수입을 올렸다고 하지만 국산 면세 주류는 간부용으로만 팔 수 있기에 예전 사병들 상대로 한 막걸리 장사만큼의 수입은 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 공정의 편의를 위해 분리 배양한 특정 균주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이때 종균을 로열티 주고 사와야 한다. 이러한 누룩과 효모의 종균의 특허는 일본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막걸리를 전통 누룩([[금정산성 막걸리]] 등)이나 개량 누룩([[국순당]] 막걸리들과 [[느린마을 막걸리]] 등)으로 빚는다면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공정 관리 등의 이유로 일본식 입국으로 빚는 막걸리가 대부분이다. 다행히 국가주도로 전통 누룩이 생산되었고 그 기술이 무상으로 공개되므로([[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32675_5780.html|관련기사]]) 전통 누룩/개량 누룩의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 과거에는 막걸리 병이 비닐로 되어 있었으나, 본드 흡입 등 병이 악용되자 플라스틱 병으로 전면 교체되었다. * [[북한]]에서는 애초에 한반도에서 면적이 호남평야 다음 가는 재령평야를 갖고 있는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제외하고 한반도 북부에서는 막걸리가 상대적으로 덜 흔한 술이기도 했다. 또한, 한반도 북부쪽 기준으로는 막걸리의 도수가 낮은 편이다. 북부쪽에는 알코울 도수가 높은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다보니, 맥주는 술이 아니라 그냥 음료수로 칠 정도이다. 때문에 인기가 없어서 남쪽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생산이 단절되어 한동안 문헌 속에나 있었던 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에 남한을 통해 막걸리 제조법이 재도입되고, 황해도 지역의 노인을 통해 주법을 다시 부활시킨 것으로 보인다. [[https://www.dailynk.com/%EB%B6%81-%EC%A7%80%EB%B0%A9%EC%97%90%EB%8F%84-%EB%A7%89%EA%B1%B8%EB%A6%AC-%EB%B3%B4%EA%B8%89/|#]]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여러 종류의 남한제 막걸리를 대접해서 좋은 반응을 얻은 적도 있었다고 [[https://www.choic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8|한다]]. 이후 김정은 집권기부터 남쪽에서 생산된 술을 전국에서 먹을 수 있는 유통망이 발달하여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도 막걸리가 전래, 생산, 소비되고 있고 중국 현지 정부에서도 이를 무형문화재로 [[https://www.yna.co.kr/view/AKR20110512191200097|지정]]하기도 했다. * [[해설위원]]들의 스타일이 감정에 치우치면서도 웃긴 멘트를 잘 하는 해설을 하는것을 보고 '막걸리 해설'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막걸리 한잔씩 걸친 동네아저씨가 해설하는 것 같다는 의미라서 좋은 의미로는 말하면 정겹고 재밌다는 말이지만, 나쁘게 보면 앞뒤 안가리고 막 말을 한다는 스타일이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대표적으로 축구의 [[이상윤(축구인)|이상윤]], [[최용수]], 레슬링의 [[심권호]], 스케이팅의 [[제갈성렬]], 컬링의 [[이재호(컬링)|이재호]]가 있다. * 2022년 '막걸리 빚기'라는 이름으로 [[무형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종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