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카베오기 (문단 편집) ==== 내용 ==== * 1장 1절~10절 -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 * 1장 10절~2장 18절 -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 * 2장 19절~32절 - 저자의 머리말 * 3장~4장 - 대사제직의 타락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은 팔레스타인과 유대를 점령하지만, 유대인들에게 매년 20탈란트의 세금을 바치는 조건으로 대사제 중심의 신정정치의 자치권을 용인했다. 이때까지는 그리 큰 문제는 없었다. 한때 대사제장 오니아스3세가 매년 바치턴 20탈란트의 세금을 바치지 않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유대의 자치권 박탈을 위협했으나 토비아 가문의 요셉이 밀린 14년치 세금을 몽땅 내버려서 자치권 박탈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4세에 이르러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예술을 좋아하긴 했으나 군사적 능력은 별로였던 그의 대에 이르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고 이 틈을 노린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결국 기원전 200년, 안티오코스 3세가 파네이온 전투에서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격파하여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안티오코스 3세는 여기저기 정복전쟁을 벌이다가 패배했고 결국 거액의 전쟁배상금만 남긴 채 기원전 187년에 암살되었다. 이후 안티오코스 3세의 동생인 셀레우코스 3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그는 안티오코스 3세의 전쟁배상금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한 끝에 예루살렘 대성전의 금고를 탈취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셀레우코스 3세의 생각에 대해 시리아 총독 헬리오도로스는 [[이건 미친 짓이야|이건 미친 짓이라면서]] 예루살렘 대성전 금고약탈을 중단했고 결국 셀레우코스 3세를 암살하기에 이른다. 로마에 머무르고 있던 안티오코스 4세는 이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헬리오도로스를 격파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 5장~7장 -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전 국민 헬레니즘화 정책 마카베오기 상권 프롤로그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7장에 나오는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끔찍한 순교가 유명하다. 여러 예술작품의 영감이 되었으며, 특히 [[죽음의 무도]]의 프랑스어 이름인 ‘Danse Macabre’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 8장~15장 - 유다 마카베오의 승리와 성전 재봉헌. 마카베오기 상권 '유다 마카베오의 항쟁' 초중반부와 일맥상통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마카비 전쟁, version=31, paragraph=2.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