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카베오기 (문단 편집) ==== 내용 ==== * 1장 - 프롤로그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서아시아로 대원정을 하여 [[헬레니즘 제국]]을 세웠으나, 알렉산드로스가 32세에 요절하자 제국은 한순간에 붕괴하여 [[안티고노스 왕조]], 트라키아의 리시마코스 왕조, 시리아-이란의 [[셀레우코스 왕조]],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분열되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의 그리스 문화와 서아시아의 문화가 융합되어 생겨난 [[헬레니즘 문화]]는 크게 번성하였고, 상당수의 유다인들도 이 헬레니즘 문화에 매료되어 자신들의 고유한 풍습과 율법을 버리기 시작한다. 로마에 인질로 잡혀 갔다 돌아온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재위: BC 175~163)가 셀레우코스의 왕이 되자, 변절한 유다인들은 그를 찾아가 헬레니즘 문화의 수용을 허락받고, 에피파네스가 군대를 이끌고 프톨레마이오스를 치고 이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쳐 성소를 털고 유다인들을 학살한 뒤 다윗 성을 재건하여 자신들의 성채로 삼자 그곳의 주둔병이 된다. 또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전국의 백성들이 헬레니즘 문명만을 수용해야 한다고 여겨 각 민족에게 자신들의 고유 풍습을 버릴 것을 강요하고, 온 백성을 감시할 감독관들을 파견하여 율법서를 태우고, 안식일을 지키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아들에게 할례를 하는 등 율법대로 행동하는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 2장 - [[마타디아|마타티아스]]의 반란 마타티아스는 요아립 가문의 사제로서 모데인이란 곳에 살고 있었으며, 시메온의 손자이자 요하난의 아들이었다. 그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요하난 가띠, 시몬 타씨, '''유다 마카베오''', 엘아자르 하우아란, 요나탄 아푸스가 그들이었다. 마타티아스는 유다인과 유다의 전통, 율법이 이민족들에 의해 박해를 받는 현실을 보고 아들들과 함께 옷을 찢으며 통곡했다. 감독관들과 변절한 유다인들이 모데인에 가서 그곳의 지도자인 마타티아스에게 헬레니즘식 제사를 강요하고 희생 제물을 가져오자, 마타티아스는 그것을 옮기던 변절자를 죽이고 민중을 선동하여 성읍을 버리고 산으로 피해 그곳에 주둔했다. 그곳에서 마타티아스 세력은 천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전통을 지키려고 [[안식일]]에 쳐들어온 군대를 막지 않아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식일에라도 침략을 받으면 맞서 싸우기로 서로 정하였다. 그때 유다 율법에 헌신하는 하시드인 한 무리가 그들과 합류하여, 군대를 조직하고 이스라엘 영토에서 변절자들을 몰아내고 할례를 안 받은 소년들에게 할례를 강제하고 헬레니즘식 제단도 모두 헐어버렸다. 하지만 마타티아스는 곧 사망하게 되고, 죽기 전에 아들들 앞에서 [[야훼|그분]]께 희망을 두는 이는 약해지지 않으며 죄인들의 영광은 거름더미와 구더기로 변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율법을 지킬 것을 당부하고, 힘센 용사 유다 마카베오를 장수로 임명한다. 때는 기원전 166년 봄이었다. * 3장~9장 27절 - 유다 마카베오의 항쟁 [[유다 마카베오]]는 마타티아스의 뒤를 이어, 벳 호론에서 셀레우코스 장수인 아폴로니우스가 이끄는 이민족+사마리아인 군대를[* 이후 유다는 아폴로니우스의 칼을 전리품으로 얻어 죽을 때까지 그 칼로 싸운다.] 이어 다른 장수인 세론의 다수의 군댜대를 격파하였다. 이에 [[안티오코스 4세]]가 격분하여 출병을 시작하려 했으나, 그때까지 전국에 헬레니즘 문화를 강제로 전파하느라 국고를 탕진하고 조공도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고, 왕족인 리시아스에게 이스라엘 격파를 포함한 모든 업무를 맡기고 자기는 국군 전체의 절반을 이끌고 페르시아로 가서 조공을 거두러 갔고, 리시아스는 프톨레마이오스와 니카노르, 고르기아스 등 유능한 장수들을 파병하여 유다를 공격한다. 이에 마카베오와 동료들은 예루살렘 맞은편에 있는 미츠파란 곳[* 이전에 이스라엘의 기도소가 있던 곳이었다.]으로 가서 하늘에 대고 기도를 올려 사기를 충전하였으며, 그 후 엠마오에서 적들을 치고, 이듬해에는 벳 추르에 있던 셀레우코스 군대를 격파했다. 그리고 형제들과 함께 [[시온#s-1]]으로 가서 붕괴되었던 야훼 성전을 수리하여 봉헌했다. 이에 자극받은 이두매아인들과 암몬인들이 침공하자 유다 마카베오의 군대는 이를 막아냈으며, 길앗과 갈릴래아의 유대인들이 핍박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이민족들을 물리쳐 유대인들을 구했다. 또한 [[블레셋|필리스티아]]인들의 땅 을 쳐 우상들과 제단을 부수고 전리품을 얻어 갔다.[* 그런데 이때 유다의 형제였던 요셉과 아자르야가 전공을 세우고 싶어서 앞뒤 생각 없이 얌니아로 쳐들어갔다가 제대로 깨지고 돌아온다...] 페르시아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유다인들이 자기 계획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을 알고 화병에 걸리는데, 죽기 전에 동무인 필리포스에게 자기 아들 안티오코스([[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 BC 163~161)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필리포스에게 섭정을 맡긴다는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필리포스는 안티오쿠스가 이끌었던 군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고, 소식을 들은 안티오코스 에우파토르와 리시아스는 유다와 화친하기로 결정한다.[* 필리포스의 쿠데타 이전까지 에우파토르의 군대는 주변국의 용병까지 끌어모아 벳 즈카르야의 유다인들을 몰아내고 이어 벳 추르를 점령했으며, 시온 산까지 포위했었다. 즉 쿠데타가 유다인 입장에서 개이득이었던 셈.] 하지만 화친을 위해 시온 산으로 간 임금은 약속을 어겨 시온 산 둘레의 성벽을 헐어 버리고, 그가 없던 사이 수도 안티오키아를 점령한 필리포스도 그냥 무력으로 진압한다.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BC 161 ~150)가 정변을 일으켜 안티오쿠스와 리시아스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유다인 변절자들의 대표 알키모스가 그에게 붙어 예루살렘을 치고 자신을 유다인들의 지도자로 세울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임금이 바키데스를 시켜 알키모스를 도왔으나 역시나 유다 마카베오가 그들을 몰아내었고, 이에 데메트리오스 1세가 다시 장수 니카노르를 보냈으나 유다는 카파르살라마 부근에서 니카노르를 전사시키고 그의 군대를 무찔렀다. 이후 유다는 [[로마 제국]]이 강력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과 우호 조약을 맺었으나, 어느새 데메트리오스 1세가 바키데스와 알키모스를 파견하여 대군을 이끌고 유대 지역을 침공하고, 이에 놀란 아군 상당수가 달아나자, 마카베오는 남은 군사 800명을 이끌고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다가 전사했다. 이후 이스라엘에는 다시 변절자들이 득세하였고, 율법을 고수하던 유다인들은 이들에 의해 바키데스 앞으로 끌려가 고난을 겪었다. * 9장 28절~12장 - [[요나단(하스몬)|요나단]]의 유다 마카베오 계승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유다의 벗들과 유다의 형 시몬은 유다의 동생 요나탄을 그 후계자로 모시고, 바키데스의 세력을 피해 트코아 광야의 아스파르 연못 근처에 주둔했다. 그 곳에서 얌브리의 자손들을 털고[* 그들이 자신들의 보급대를 털어 가고 보급대 책임자였던 요나탄의 형 요한을 죽이자 그 복수로 얌브리의 자손들이 가나안 귀족 영애를 데리고 신랑의 집을 향해 행렬을 벌이고 있었을 때 그들을 습격하고 요르단으로 돌아갔다.] 바키데스와 대치하였으나, 알키모스가 성소 안뜰의 벽을 허무는 작업을 지휘하다 갑자기 중병을 얻어 죽어버려서 바키데스도 데메트리오스에개 돌아가야 했다.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인들과 유대인 변절자들이 다시 바키데스를 불러 유다를 치도록 유도하였으나 또 요나탄이 잘 막아내서, 바키데스는 자신을 선동했던 자들을 죽이고 요나탄과 화친하였다. 한편,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아들을 자처하던 알렉산드로스 에피파네스[* 다른 이름은 알렉산드로스 발라스.]가 프톨레마이스를 점령하고 왕을 자처하자, [[데메트리오스 1세|데메트리오스 소테르]]는 그가 요나탄과 동맹을 맺기 전에 선수를 치려고 사병 통솔권을 주고 성채의 유다인을 해방시킨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이 소식을 듣고, 요나탄에게 편지를 써 그를 유대인 대사제이자 '임금의 벗'으로 임명하는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데메트리오스도 그걸 알고 각종 세금의 면제권과 율법을 지킬 권리, 프톨레마이스 지역의 통치권 등 더 좋은 조건을 내걸었지만 이미 유대인을 여럿 죽이고 약탈한 그를 요나탄과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고, 결국 요나탄은 알렉산드로스와 손잡고 데메트리오스를 무찌른다. 알렉산드로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사위가 되자 요나탄도 둘에게 예물을 주어 '임금의 벗'의 자리를 굳혔고, 유다인들은 본격적인 평화를 누리는 듯 했다. 그러나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가 크레타에서 돌아왔고, 부하 아폴로니우스를 시리아 총독으로 세웠다. 아폴로니우스가 요나탄에게 시비를 걸고 털렸기에 알렉산드로스는 잠깐 걱정은 덜었지만, 얼마 후 프톨레마이오스가 셀레우코스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데메트리오스와 손을 잡았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심지어 알렉산드로스에게 시집 갔던 자기 딸 클레오파트라를 다시 데려가서는 데메트리오스에게 주기까지 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와의 전쟁에서 패해 달아나고, 아라비아에서 잡디엘이란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도 사흘 만에 죽고 그의 부하들도 현지인들에게 살해당해 데메트리오스 2세(BC 146~138)가 [[어부지리]]로 셀레우코스의 임금이 된다. 요나탄은 당시 변절자들의 주둔지였던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임금의 분노를 살 만한 짓을 했는데, 이때 데메트리오스 2세를 찾아가 뇌물을 주어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는 은근슬쩍 선왕들이 자신에게 줬던 권리를 다시 보장받는 데 성공한다. 데메트리오스는 나라가 평화로워지자 외국에서 모집한 부대를 제외한 군대를 해산시키는데, 졸지에 실업자가 된 군인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데메트리오스는 요나탄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대신 예루살렘 성채를 포함한 유다 지방 요새의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하지만[* 줄곧 유다인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진압에 성공하자 그걸 어겼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였던 [[디오도토스 트리폰]]이 이 소식을 듣고는 아라비아인 이말쿠에의 보살핌을 받던 안티오코스 6세 디오뉘소스(BC 145~140)에게 가서 즉위를 권유하였다. 디오뉘소스가 동의하자 트리폰은 반란군들을 모아 데메트리오스를 몰아내고, 요나탄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가 데메트리오스의 잔당들을 물리치도록 하였다. 이후 요나탄은 로마와 [[스파르타]]와의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데메트리오스의 잔당들과 자밧인(아랍인)들을 물리치고 유다의 요새를 수리하였다. 그러나 트리폰이 안티오코스를 배신하고 자기가 임금이 되어, 자신의 왕위 찬탈을 반대할 요나탄을 없애기 위해 벳 스안에 주둔하여 요나탄을 회유했다. 프톨레마이스 성읍 양도 등의 혜택을 약속받은 요나탄은 소수의 호위병만 남기고 벳 스안으로 들어갔지만, 트리폰이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를 시전해 그들을 전멸시키고 요나탄은 붙잡힌다. * 13장~16장 - 시몬의 하스몬 왕조 수립 요나탄의 형 시몬은 요나탄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유다의 지도지자를 자처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고쳤다.[* 앞선 전투들로 인해 유다 마카베오를 비롯한 시몬의 형제들은 다 죽고 하나남은 요나탄마저 붙잡혀 마타디아스의 후계자는 시몬 혼자만 남았기 때문이다.]트리폰은 은 백 달란트를 주고 요나탄의 아들 둘을 인질로 보내면 요나탄을 풀어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했고, 시몬이 진짜로 그렇게 하자 도리어 바스카마에서 요나탄을 죽였다. 시몬은 그의 유골을 모데인으로 가져와 장례를 치렀다. 이후 트리폰은 안티오코스 6세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해 [[아나톨리아]]에서 2년간(BC 140~138) 즉위했다. 그러자 시몬은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와 동맹을 맺어 기원전 142년에 [[하스몬 왕조]]를 선포하고, 가지라와 예루살렘 성채를 점령했다. 하지만 그때 데메트리오스는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임금이었던 아르사케스에 의해 체포되었기 때문에 그의 형제였던 [[안티오코스 7세]] 시디테스(BC 138~129)가 왕이 되었다. 시몬은 유다를 평화롭게 하였고 로마와 스파르타와 맺은 동맹도 갱신했다. 하지만 안티오코스 시디테스는 기원전 139년에 트리폰 축출에 성공하자 시몬을 배신하고, 자신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트리폰을 쫓으며 부하인 켄데베오스를 시켜 유다를 침략했다. 시몬의 아들 요한 힐카누스가 이를 시몬에게 보고하여 군대 통솔권을 얻고 켄데베오스르르 무찔렀다. 그러나, 위기는 내부에서 찾아왔다. 예리코 장수였던 시몬의 사위 아부보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가 시몬의 대사제직 겸 왕직을 탐하여 기원전 134년 2월에 그와 그의 아들들을 자신의 요새 독으로 데려와 술을 잔뜩 먹이고는 부하들을 시켜 암살했고, 안티오코스 7세에게 자신을 유다의 왕으로 삼을 것을 요청하고 요한 힐카누스를 죽이러 병사를 보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앞질러 요한에게 이 사실을 모두 고하였고, 요한은 병사들을 모두 죽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