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작 (문단 편집) === 기원과 정립 === 마작은 중국에서 [[종이]]와 [[플레잉 카드]]의 발명과 함께 만들어졌다. 일설에 따르면 [[춘추시대]]인 기원전 6세기경 [[공자]]가 발명했다고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일설일 따름이다. 기원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은 [[중국]] [[명나라]] 시대의 놀이인 엽자희(葉子戲)에서 유래되어, [[청나라]] 말 [[동치제]] 시기 닝보(寧波)의 진정약 (陳政鑰, 자는 어문魚門, 호는 앙루仰楼, 1817~1878)이라는 사람에 의해 현재와 거의 유사한 형태로 정착되었다는 설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진정약을 마작창시자로 본다.] 이 설에 의하면 [[당나라]] 시대의 놀이인 [[투전|마조]](馬弔)와 [[송나라]] 시대의 놀이인 추패구(=[[골패]], 推牌九/骨牌), [[원나라]] 시대의 놀이인 간호(看湖, 看虎, Khanhoo)에서 유래한다. 한편 [[청나라]] 시대 때에 간호 등 주로 1000을 제외한 십만자를 제외한 모양이 3개인[* 한 덱에 문전, 삭자, 만자, 십만자 4개의 모양이 있다. 한편 십만자는 2~9, 100, 1000, 10000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가 적을수록 강한 패가 된다.] [[러미]] 계열 카드 놀이들이 유행했고, 이것들이 나중에 마작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한편 [[명나라]] 시대에 엽자희라는 40장의 덱[* 십자(十字), 만자(萬字), 삭자(索子), 동전(文錢) 네 가지 모양의 숫자 1~9 각 9장 + 꽃패 4개]으로 발전하여, 이후 십자의 9장이 빠지고 꽃패가 추가 되며 현재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 외에 기원했다는 놀이도 많다. 그 중에서는 중국 [[장쑤성|장쑤]] 타이창(太仓)시에서 만들어진 호량패(護糧牌), 기원전 2천년 우(禹) 황제 시절 때의 특권층만 가지고 놀았던 40장 덱의 파림(巴林), 동기(同琪) 혹은 도동기(倒銅琪)라고 불리는 놀이 등이 있다. 동기를 무시 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사용되는 점수봉이 이 놀이에서 사용되는 주마(籌碼)라고 하는 계산봉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태평천국]] 기원설도 있다. 이때의 마작을 화패와 조커가 대량으로 들어갔다 해서 화마작(花麻雀)이라고 하며, 화패, 공장, 문장 등의 다양한 패가 추가되어 구성이 150~160장으로 늘어났다. 이후에 중국에서는 삼원패와 풍패를 남기고 다른 잡패들은 제외되며 청마작(淸麻雀)으로 정립되었다. [[당나라]] 시대의 [[밀교(불교)|밀교]]승인 대혜선사 일행(一行)[* 밀교의 가장 중요한 법경 중에 하나인 대일경(大日經)을 선무외와 함께 한역하기도 하고, 대연력(大衍曆)이라는 역법을 만들기도 한 인물.]이 발명했다는 설도 있고, 또 [[주나라#s-1|서주시대]] 시생(施姓)씨를 가진 어부가 만들어 낸 놀이를 진어문이 다듬었다는 설도 있다. 결론적으로 현대와 같은 마작의 정립에는 앞서 말한 '진정약 어문'이라는 인물이 어찌 되었든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어디까지나 진정약과 관련된 일부의 설만 소개했을 뿐으로, 소개하지 못한 설까지 알아보면 진어문과 관련된 설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실제로 닝보에 위치한 마작 박물관은 마작의 규칙을 정립하고 전파한 진정약을 모시는 사당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에서는 이런 기원--으로 위장한 비극--이 있다고 한다. [[http://cafe.daum.net/yiwu.china/fqyP/9?q=마작&|출처]][* 이 기원이 정확히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위에 써 있듯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먼저 삭수가 없다. 삭수패는 한국 마작에서는 쓰지 않는다. 또한 백패에 아무것도 새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유니코드에 등재된 백패({{{+5 🀆}}})를 보면 알겠지만 백패에 푸른 직사각형을 새겨 놓는다. 일본 마작도 아무것도 없는 백패를 쓰지만 화패를 쓰지 않고 삭수패를 사용하므로 이 일화는 한국 마작에서 시작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궁중 조각가가 수제자로 키운 마랑(麻郞)이라는 데릴사위와 작량(雀郞)이라는 자신의 딸 사이의 풋사랑이, 젊은 청상과부가 마량과 [[네토라레|NTR]]해서 작량과 마량 둘 다 자살해서 비극으로 끝나자, 상아에 마량과 작량의 사랑을 함축하여 새기기로 한다. 먼저 두 남녀의 사랑을 뜻하는 홍중을 새기고, 널리 펴가라고 녹발을 새겼다. 또 그들의 꽃다운 나이에 박명한 것에 대해 꽃 4개를 새겨 놓았다. 둘의 영혼이 동서남북으로 퍼지라고 풍패를 새겼다. 구만리 멀리 가라고 만수패를 새기고, 또 장천을 가는데 노자돈이 필요할 것이므로 통수패를 새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개의 패에다가 자신의 허무한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자결하여 백패를 새겼다. 그 패들이 상아로 만든 3작마작이고, 이 때문에 마작에는 귀신이 붙어있다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