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일사변 (문단 편집) === 허젠의 정변 === 그러던 중 마일사변과 무관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던 허젠이 정변을 일으켜 우한 정부에 반기를 들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상술하였듯이 국민혁명군 35군 군장 허젠은 자신의 부모가 공산당의 폭동에 휘말려 [[조리돌림]]을 당했기 때문에 공산당에 큰 분노를 품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7월 3일, 허젠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규찰대를 무장해제하고 국민당에 양보할 것을 결의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공산당의 부장은 잠시 정부를 떠날 수 있으며, 노농 대중 조직은 반드시 국민당의 영도를 받는다. 그리고 국민당의 명령에 따라 노농규찰대도 국민정부의 감독을 받아야 하며, 우한의 기존 규찰대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수를 줄이거나 군대에 편입될 수 있다.|| 이에 런비스가 반발하여 5월 지시를 공표할 것을 요구했지만 천두슈는 그 자리에서 런비스의 건의서를 찢어버렸다. 하지만 천두슈의 양보정책에도 불구하고 허젠은 6월 28일[* 혹은 6월 29일.] 반공선언을 발표하고 [[왕징웨이]], [[탕성즈]] 모두에게 공산당과의 결별을 요구하며 공산당원 숙청에 나섰다. 총공회 공격을 중단하라는 왕징웨이의 지시에 허젠은 "중앙에는 공산당이 폭동을 일으키게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가?"라며 항의했다. 허젠은 [[마오쩌둥]]에게 보복하기 위해 마오쩌둥의 부친의 묘소를 파헤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파헤쳐진 것은 마오쩌둥의 아버지의 묘가 아니라 지역 토호의 조상묘였다. 주민들이 엉뚱한 묘소를 가르쳐 준 것.] [[류사오치]], [[리리싼]] 등 공산당원들은 공산당원들은 왕징웨이에게 총공회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미 반공 폭동에 나선 장교들은 통제불능이었다. 거듭된 우한 정부 소속 장령들의 봉기에 대해서 중국 공산당은 이를 장제스의 사주를 받은 반동 군관들의 잔혹하고 비열한 반란행위 정도로 폄하하고 있지만 마오쩌둥 평전의 저자 알렉산드르 판초프는 다음과 같이 냉정히 분석, 평가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또 다른 요인은 무산 계급 테러가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어리석은 빈민들에 의해 농촌 곳곳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점이다. 유죄 여부를 막론하고 무고한 자들까지 약탈하고 살해하는 등 미친 대중의 야만적인 행동은 의심할 바 없이 통일 전선을 약화시키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었다. 그들의 행동은 '좌파'를 포함한 국민당의 기반인 중소 지주를 겨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적색' 테러에 고통받는 가족들이 있는 국민당 장교의 폭동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마오쩌둥 평전, 민음사, 269페이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