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의태자 (문단 편집) === 「김은열 묘지명」 === 조선 후기 들어 [[1784년]](정조 8)에 [[경순왕]] 제4자(四子)라는 『김은열 묘지석』을 개성 어느 산 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이를 보고 김노규가 「김은열 묘지명」을 근기하였는데, [[경순왕]]은 고려에 항복 후 고려 태조의 딸들인 낙랑공주 왕씨 등을 배필로 맞이하여 슬하에 8남을 더 두었다고 한다. 그 이름은 「일(鎰), 굉(鍠), 명(鳴), 은열(殷說), 중석(重錫), 건(鍵), 선(鐥), 종(鐘) 」이라 한다. 특히 2자 굉(鍠)과 4자 은열(殷說)은 고려 태조의 외손인 낙랑공주 소생으로 고려 평장사를 지내고 공이 있는 신하여서 특별히 장지까지 하사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기 「묘지명」에 나오는 [[경순왕]] 8자들은 《고려사》 등의 문헌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 자료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생애 및 배위 등도 누락되어 있고, 단지 형제 서차만 기술되어 있을 뿐, 묘지명 형태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묘지명》은 나라의 역사 기록들과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의문을 갖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