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의태자 (문단 편집) == 여담 == * 마의태자는 또 다른 떡밥을 남겼으니, 바로 금태조 [[완안아골타]]와 관련된 떡밥이다. 이른바 [[여진족 신라인설]]이다. 썩은 떡밥인 애신각라 신라사랑 떡밥과 달리 옛 기록이 근거로 뒷받침되는데 고려사나 여러 기록들에 따르면 마의태자의 아들인 김행, 혹은 김준이 [[만주]] 땅으로 들어가서 대를 이은 결과 나온 게 금태조 아골타라는 것이 떡밥의 핵심. 하지만 고려사를 엄밀하게 살펴볼 때 김행이나 김준이 마의태자의 아들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순암 [[안정복]]은 마의태자의 세 아들 중 김준이 여진족에게 망명했고, 나머지 두 아들은 고려에 남았다고 말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역사에 남은 것만 세 명이니 결론적으로는 네 명이 된다. * 마의태자의 묘는 금강산 비로봉 바로 아래에 있다고 한다. 금강산 관광에서 비로봉까지 공개될 예정이어서 마의태자의 [[묘]]도 실물이 공개되나 했지만, 남북 관계 경색과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보류된 상황. * [[석굴암]]의 보석과 관련된 이야기의 주 스토리로 한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는 마의 태자가 2명이었으며,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2명의 왕자중 1명은 정설대로 금강산에, 나머지 1명은 양평 용문사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때 용문사로 들어간 왕자가 보석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을 떠날 때 같이 매장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