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의태자 (문단 편집) == 개요 == [youtube(Bi5UIUNp47k)] [[신라]]의 마지막 [[국왕]]인 제56대 [[경순왕]] 김부와 죽방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왕자]]이다. [[이름]]은 사서에서 전하지 않으며 후대 사람들이 [[삼(식물)|마]]로 된 옷을 입고 살았다 하여 '마의태자(麻衣太子)'라 불렀다. 이와 같이 마의태자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 신라가 [[멸망]]하자 [[금강산|개골산]]([[금강산]]의 [[겨울]] 이름)에 들어가 삼베 옷을 입고 풀을 먹다가 일생을 마쳤다는 기록 이외에는 어떠한 기록도 없다. 마의태자라는 이름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5월부터 1927년 1월까지 [[이광수(소설가)|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신문 [[소설]]을 통해서였다. 이후 극작가 [[유치진]]이 마의태자를 주제로 한 동명의 [[희곡]]을 발표하면서 마의태자의 비극적인 [[이미지]]가 대중들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족보상 경순왕은 897년에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고[* 족보상 경순왕은 897년생으로 되어 있다. 경순왕이 860년대생인 [[헌강왕]]의 외손자라는 점, 부친 [[김효종(신라)|김효종]]과 모친 [[계아태후]] 김씨의 혼인시점이 897년인 것과 그가 936년 항복 시점에 자기 뜻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장성한 아들 마의태자가 있었다는 점, 978년까지 살아있었다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족보의 기록이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897년생으로 추정되는 경순왕은 30세에 신라왕으로 즉위해서 39세에 [[고려]]에 귀순한 뒤 81세까지 천수를 누린 것이 된다.], 마의태자는 경순왕이 20살이었던 917년에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87년 10월 31일 부안 김씨 대종회에서 건립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풍리 소재 마의태자 유적비에는 성이 김(金), 휘가 일(鎰), 자가 겸용(謙用)인 태자는 신라 56대 경순왕과 죽방왕후 박씨 사이에서 왕의 9남 3녀 중 첫째 왕자로 917년에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신라가 멸망한 936년 1월[* 음력 935년 12월.] 경순왕은 39세였고 마의태자는 19세였다는 것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