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쩌둥/평가 (문단 편집) == 군사 == 마오쩌둥은 훌륭한 군사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그 능력을 바탕으로 [[중국 공산당]]의 최고사령관이자 군사전략가로서 국민당을 대만으로 밀어내고 공산당의 중원 점거를 달성시켰다. 마오쩌둥은 [[중일전쟁]]에서 [[일본 제국]]과의 직접적인 싸움을 피하고 공산당의 세력을 늘리는 데에 집중하였다. 이를 통하여, 중국 공산당은 나중에 일본과 국민당을 모두 밀어내고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장제스의 국민당이 중일전쟁 시기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부패 문제가 심각했으며 장제스가 간첩들을 색출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마오쩌둥의 선동이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대장정]]에 이르기까지 국민당의 초공 공세가 강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공산당이 싸움을 피하고 세력을 키우는 것에 집중한 것에는 국민당의 과거 행보가 원인이 되었다. 이를 통하여 전력상 가장 열세이던 공산당으로서는 일단 직접적인 싸움을 피하고 기회를 도모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휘하 장수들이 일본 제국과 싸우려 들 때, [[마오쩌둥]]은 자신들의 현재 전력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종전 후의 판도를 생각해 교전을 제한하며 [[국공내전]] 승리의 포석을 깔았다. 세력을 키우겠다고 중국이 망하건 말건 신경을 끄지도 않았다. 일제의 최종 승리만큼은 막아야 했으니까. 다만 전면전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정면 교전은 피하고, 세력 확대에 집중하였다.[* 마오쩌둥은 나중에 일본에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건 국교 정상화 과정 중 사석에서 개드립 친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중국 공산주의 혁명사에서 그의 기여와 영향력은 [[러시아 혁명]]에서의 [[레닌]]보다도 훨씬 컸으며,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의 수립자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이 불리한 여건에서 [[국공내전]]을 승리하고 살아남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코민테른]]의 지시를 따랐던 초기 중국 공산당의 투쟁 노선이 실패로 끝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 공산당에 인재가 마오쩌둥밖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장정]]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중일전쟁]]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만큼의 대국적인 시각을 가졌으며 그 와중에 내부반발을 제압할 만한 정치력을 가졌던 인물은 마오쩌둥만한 인물이 없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그의 군사적 재능은 게릴라 전사를 새로 쓰게 만들 수준으로 탁월했다. 마오쩌둥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장제스]]가 [[초공작전|공격할 때]]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공산당이 그날로 멸망했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게릴라 전술에 대해서는 적군이던 [[한국군]]도 크게 고평가한 바 있으며, [[채명신]] 장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월남파병|한국군]]의 기본 전략인 중대 전술 기지 개념을 만들 때 마오쩌둥의 게릴라 병법을 참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http://www.dmook.co.kr/gallery/viewContents.asp?seq=150826&path=&page=191&vmode=contents|#]] 그러나 마오쩌둥의 군사적 능력이 다소 부풀려졌다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마오쩌둥은 [[서안 사건]] 이전까지 장제스에게 밀리고 있었고, [[초공작전]]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반에는 게릴라전에 적응하지 못한 국민혁명군이 토벌에 실패했으나 점점 국민혁명군이 공산당의 게릴라 전술에 적응하면서 탈탈 털려서 결국엔 [[대장정|도망가야]] 했다. [[장쉐량]]이 공산당의 숨통을 완전히 다 끊어버리기 전 장제스를 감금하는 [[서안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공산당은 박멸당했을 것이며 최후에 공산당이 국민당을 이긴것도 거의 10여년간 국민당이 사실상 혼자 일본 제국과 싸우느라 [[국공내전]] 당시 힘이 다 빠진 상태였던 데다 부패 문제가 심각하였고 가장 중요했던 점은, '''마오쩌둥의 [[프로파간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장제스의 세력이 일본제국과 싸우며 껍데기만 남은 그 상황에서도 마오는 장제스와 협상하면서 장제스의 역량을 두려워해 회담 이후 며칠동안 앓아 누웠을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