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쩌둥/평가 (문단 편집) ==== 한국 ====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을 지원한 장본인이자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공산주의 독재자 중 하나였기에 정치가로써는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지만, 대한민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정치현실주의적 성향의 국민들에게는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 우선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독재자나 학살자, 6.25 전쟁에 불법 개입하여 한국의 [[북진통일]]을 무산시키고 현재에도 [[북한]]이라는 존재로 한반도에 어마어마한 악영향을 끼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악평을 듣고 있다.[* 실제로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중국]]이 [[6.25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6.25 전쟁]]은 국공내전이 끝난 지 불과 1년 뒤에 터졌고, 대부분의 수뇌부들은 [[미군]]과 맞부딪칠 위험을 감수하느니 내부 전열이나 정비하고 [[대만]]부터 쳐서 합병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마오쩌둥]]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위험과 대만 침공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물론 미국이 한반도를 넘어 중국까지 공격하면서 [[국공내전]]을 재개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중국 마오쩌둥 정권이 북한을 지켜낸 것의 수혜국에 중국과 북한 뿐만 아니라 대만까지 포함된 것은 현재까지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정치현실주의자들또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숨은 공헌을 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으로 분단 상태를 유지시킨 간접적 원흉이기에 전반적으로는 평가가 좋지 않다. 다만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주의자들에게는 ‘마오의 여러 정책 실패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경제가 성장했다’라는 평가를 듣는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대국으로써 상대적으로 소국인 한반도를 사실상 속국으로 오랜 기간동안 지배하다시피했고, 지배하지 않았던 기간에도 일본과의 교역로에 위치해있기에 수없이 지배하려고 시도하는 등 한반도 국가에 이런저런 간섭을 가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초창기 당시 중국의 여러 실책으로 인하여 중국 내부의 인프라는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고, 1970년대 당시에는 전후로 복구되던 대한민국보다도 인프라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중국의 압박을 덜 받으면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 한반도 국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반중주의자나 정치현실주의자의 경우 마오쩌둥을 의외로 역대 최악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적은 편이며 마오쩌둥보다는 오히려 덩샤오핑과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지도자들을 더욱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중국이 개방된 이후 급속도로 강대국으로 성장하여 현재 소련에 이어 벌써 미국과 적대하고 있는 걸 보면, 마오쩌둥이 상식적이었을 경우[* 마오쩌둥의 상식과 별개로 [[대약진운동|모든]] [[문화대혁명|삽질]]의 시작이 된 [[중소결렬]]은 거의 필연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과 [[소련]]의 공산권 패권경쟁, 그에 따른 [[중국]]의 삽질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으로 필연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에게는 최소한 당분간은 심히 껄끄러운 시나리오가 펼쳐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의 국력을 침체시키지 않고 안정성장 노선을 내세우던 집권 초반기의 모습 그대로 중국의 공업화를 이끌었으면[* 공산주의식 시장경제인 이상 한계가 크긴 했겠지만 그 엄청난 규모 덕분에 총 GDP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 지도층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개판을 경험하고 나서도 자본주의 도입에 반대할 정신이 있었다는걸 감안할 때, 중국이 50~60년대에 안정적이었다면 개혁개방에 따른 엄청난 속도의 경제성장 같은건 없었을 것이다. 대략 처음에는 나름 할만하지만 가면 갈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모양새.] 일본은 중국의 압도적인 규모에 밀려 아시아 1위 경제대국이자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없었을 것이고, 한국도 1990년대 이후로 중국에 물건팔아먹을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며 북한의 국력이 크게 쇠퇴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냉전 체제 경쟁의 최전선에 섬으로서 받은 '''미국의 원조'''가 이른바 [[한강의 기적]]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는 걸 생각하면 더 더욱 그렇다. 물론 이런 평가도 지도자로써 마오쩌둥이 너무 부적합했기에 적국 입장에서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이므로 별로 좋은 평가는 아니기는 하다. 반대로, 중국에 여유가 있어서 주변국에 간섭하기를 원 역사보다 훨씬 일찍 시작했다면, [[한국|여타]] [[일본|동아시아]] [[대만|국가]]들의 반공 명분이 훨씬 강해져 이들의 사이가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한일관계]] 개선도 현실적인 이유(중국의 위협) 때문에 원 역사보다 훨씬 빨리 이루어졌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산주의 독재자이기에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미움의 대상이지만 정치현실주의자들에게는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의 숨은 공헌자이자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통일을 막은 원흉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