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쩌둥 (문단 편집) === 혁명 이론 === 마오쩌둥의 [[사회주의]]는 [[소련]]식의 마르크스주의인 레닌주의(사실은 [[스탈린주의]])와는 좀 다르다. 이는 당시 중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혁명 당시 [[러시아국]]는 농업 국가이기는 했어도 도시에는 충분한 수의 노동 계급이 형성되어 있었고, 정부 기관이 도시에 몰려있었기 때문에 도시 노동자만 잘 조직해도 혁명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래서 레닌주의에서는 도시의 노동 계급을 혁명의 주체로 보았다. 중국은 러시아보다도 훨씬 뒤쳐진 농업 국가였고, 노동자와 도시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적용해서 사회주의 혁명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실제로 1차 국공 합작이 붕괴된 후 소련 유학생 출신들이 중국 공산당의 당권을 잡고 소련식의 전략을 차용했다가 모두 망하고 만다. 이렇게 되어 마오에게 자연스럽게 당권이 돌아왔다. 반면에 마오쩌둥은 소련의 혁명 이론 대신 중국 고유의 농민 반란의 역사에 주목하여 농민을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 삼는 전략을 마련했다. 그리하여 마오쩌둥은 도시의 직접 봉기 대신에 농촌에서 세력을 넓혀서 도시를 포위하는 전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전략은 전근대적 사회에 매우 효과적이었고, 한동안 여러 제3세계의 혁명가들이 차용하여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마오쩌둥은 이런 마르크스 - 레닌 -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교조주의]]를 "(비료로 쓸 수 있는) 똥보다도 못하다"고 경멸했다. 이런 점 때문에 마오쩌둥은 서구의 사상을 도입한 인물이 아니라 멀리는 한고조 [[고제(전한)|유방]]부터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에 이르기까지, 중국사에서 난세마다 등장하는 농민 반란군의 전통을 잇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을 부추겨 중국의 전통을 모조리 박살내려고 했던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렇게 마오쩌둥의 이론은 소련식의 사회주의와는 영 별개의 것이었기 때문에,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국공내전]]의 말기까지도 신뢰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제스]]에게 엄청난 원조를 해주기도 했다. 소련측은 마오쩌둥을 "마가린(짜가) 사회주의자"로 공공연히 무시했는데, 결국 이것은 후에 [[중소결렬]]과 [[중국-소련 국경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