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신이 (문단 편집) == 암살 == 마신이는 [[강서성]], [[안휘성]], [[강소성]]의 군정과 민정을 총괄하는 양강총독으로 1868년에 임명된다. 이 지역은 겨우 얼마전에 [[태평천국의 난]]과 [[염군|염군의 난]]이 끝난 지역이자 [[난징]]을 관할로 두고 있으며 화중지방의 무역을 담당하는 남양통상대신의 자리도 겸해야 했기에 지방 장관직인 총독들 중 최고위직이었다. 전임자 [[증국번]]의 상군 세력을 경계한 청 조정에서 [[무슬림]]이라 뒷배가 없는 마신이를 임명해 상군 세력을 견제하려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년 후인 1870년 8월 22일(동치9년 음력 7월 26일) 마신이는 [[한족]]인 장문상에 의해 암살되었다. 마신이가 남경교장에서 병사들의 훈련을 검열한 후 처소로 돌아 가는 중에 장문상이 [[청나라]] 병사 옷을 입고 갑자기 나와 인사를 한 후 찌른 것. 또 다른 말로는 훈련 참관 중 마신이의 동향 사람인 왕함진이 갑자기 그의 곁으로 와 돈을 빌려달라고 간청했는데, 그 순간 장문상이 등장해 찔렀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청나라]]의 지방 장관들 중 최고위직의 마신이가 대낮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찔렸다는 것. 장문상이 갑자기 옆구리를 찔렀기에 마신이는 치명상을 입었고 다음날 죽고 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범인 장문상은 범행 후 도망칠 생각도 없이 마신이가 쓰러지는 걸 본 후 순순히 체포 당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사건의 구체적인 발단 또한 확실치 않았다. 장문상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신상과 범행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장문상은 당시 46세이며 [[하남성]] 여양 사람이다. 한 때는 [[태평천국]]의 [[이세현]] 휘하 병사였다. 범행 이유는 3가지가 있다고 전해진다. 1. 장문상이 태평천국군에서 나와 고향으로 갔는데 [[아내]]와 집 재산이 오병섭이라는 자에게 넘어가 있었다. 따라서 당시 [[절강성]] 순무인 마신이에게 신고했지만 마신이는 사건 해결을 거부했고 고향인 영파의 관아에 항소해 겨우 아내와 재산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재산 일부를 오병섭한테 떼였고 홧김에 한 대 친 아내는 분노에 자살해 버린 것. 이 일을 겪은 후 마신이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2. 장문상의 친구 중 해적이 있었는데 해적 토벌에 나선 마신이에게 죽었다. 3. 장문상이 생업을 위해 연 [[전당포]]를 마신이가 금지시켰다. 위의 결과가 [[증국번]]이 취조하여 얻은 결론이었다. 하지만 청나라 조정이 의사 결정을 미루고 더욱 조사를 하는 동안 대중들 사이에서 장문상, 마신이 간의 야사가 퍼지고 증국번의 상군 계열이 마신이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만화]]에서도 이홍장이 증국번의 복권을 위해 암살을 사주한 것으로 암시된다.] 결과론적으로 사건은 해적이 장문상을 사주해 죽인 것으로 나왔고 1871년 4월, 장문상은 [[능지형]]을 당한다. 어찌나 큰 사건이었던지 [[청말 4대 기안]]의 첫번째로 꼽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