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크스-레닌주의 (문단 편집) === 소련중심주의의 폐해 === 당대의 소련은 거의 유일한 공산국가였고, 그렇기에 스탈린의 결정은 당대 전세계의 공산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산주의 진영은 그의 말이라면 무비판적으로 따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는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집권하고 있는 소련의 공산화와 안정화(실제로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렇기에 스탈린의 결정들 중에는 공산주의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꽤 많았다. 대표적인 예들은 아래와 같다. * [[스페인 내전]]에서는 파시스트, 왕당파, CEDA, 가톨릭 보수주의 세력 말고도 [[아나키스트]], [[트로츠키주의]] 등 비(非)스탈린주의 성향의 좌익과도 충돌했다. * [[독일]]에서는 좌익 내의 분열과 갈등에 기여했다. [[독일 공산당]]은 스탈린의 지시로 인해 [[독일 사회민주당]]과는 늘 으르렁거렸다.[* 물론 이런 관계가 스탈린의 지시가 100% 원인인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독일 내의 [[사회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의 수정주의적 자세에 대한 이론적 논쟁도 존재했었고, 무엇보다 [[바이마르 공화국]] 성립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의 봉기를 사회민주당 정부에서 진압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좌익 간의 갈등과 반목은 훗날 [[나치즘]]과 [[아돌프 히틀러|히틀러]]가 맹위를 떨치며 선거에서 부상했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결국 [[나치]]가 집권하고 나자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사이좋게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 다만, 한때는 정반대 세력인 나치·히틀러와의 [[밀월]]을 통해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고 [[독소 폴란드 점령|폴란드를 나눠갈라 점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