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크스-레닌주의 (문단 편집) ==== [[여성]] 이론 ==== 스탈린주의의 여성이론은 기본적으로 당성(黨性)에 충실한 인간을 만든다는 근본적인 관점에 의해 전개된다. 즉, 당성의 입장에서 양성의 지엽적인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한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에서 여성인권, 여성지위는 그것이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목적하에 이루어진 면이 크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본주의사회는 인간의 무분별한 욕구에 의해 지배되는 정체이므로, '남성은 남성의 몸과 자연적 본능, 여성은 여성의 몸과 자연적 본능'이라는 성차별적 양분화는 자본주의사회하에서 필연적이다. 즉, 자본이 지배하는 곳은 남성이 지배하는 곳이다."라고 주장하여 진정한 여성 해방의 길은 공산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했는데, 위와 같은 맥락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10월 혁명 후 블라디미르 레닌이 어떤 방향으로 양성 평등 정책을 이어나갈지에 대해선, 독일의 여성주의자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인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과의 대화에서 나타난다. 그는 당시 유럽의 부르주아적 신념을 가진 근대적 여성들이 투쟁을 지나치게 문화 일면적 투쟁으로 지도했다고 비판하였다. 특히 동성애와 극단적인 자유연애주의 및 성개방주의(性開放主義) 등과 연계하여 여성운동을 지도하는 것을 상당히 불필요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나열된 것들은 실제로는 부르주아사회의 저열한 관습을 수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이 가져온 '가사노동에서의 해방'과 '여성의 기본적 선택권 존중'을 성평등 층위에서 커다란 발전이라고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성차별을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 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자본주의사회가 인성(人性)에 대해서 '유적존재(Gattungswesen)로서의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욕구하는 개인과, 그것을 이루는 개인, 그리고 이루지 못 하는 개인, 이 세 가지 측면에 기초한 인성론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모든 교환은 등가교환이라는 정의 아래에서, 여성에 대한 노동착취도 또한 여성의 특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등가교환이라는 궤변에 익숙한 역사 단계가 바로 자본주의이며, 이는 자본주의가 가진 본질적 특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이란 측면을 자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외면적인 인지로 '여성성에 따른 욕망하는 여성', '남성성에 따른 욕망하는 남성'이라는 개념을 만들 것이므로, 이 개념 아래에서 여성의 노동도 '욕망하는 여성의 여성적 노동'이라는, '노동'과는 분리된 제2의 무언가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사회하에서 여성은 분업에 익숙한 노동자들이 상품을 목도하면서 겪는 인간소외 이전에 본연 인간 노동으로부터 떨어진 행위를 산출하는 별도의 존재라는 틀에서 머물게 되면서 더더욱 심각한 인간소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의 기득권자들과 옹호 세력은 이를 '다양성', '다원성'이라는 이름하에 조장하고 옹호할 것이다. 실제로 볼셰비키 혁명 이후 여성 노동권 및 혼인 관계 내에서의 평등권 확립, 자유로운 이혼 촉진, 여성 투표권 및 선거권 보장, 가부장제 철폐를 위한 각종 법률이 만들어졌으며, 낙태도 또한 합법화되었다. 자본주의 국가는 빈곤 여성의 매매춘과 탁아소 부족으로 인한 고질적인 여성 인권 문제가 거론 되었는 데에 반해 소련은 보육원, 탁아소 정책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진행 되어 있었으며, 연방 성립 초기부터 여성이 거리낌없이 고급 직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당시 이러한 상황을 본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존 리드는 소련 방문 당시 이러한 모습을 보고 소련의 여성 정책을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레닌 사후에 이루어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층위에서 논의된 여성이론은 주로 "여성 해방의 유일한 길은 정치경제적으로 낡은 생산 관계를 끊는 것."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의 전형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이념적 흐름은 급진적 문화주의 담론을 거부하는 흐름으로 나아갔는데, 다양한 여성주의 사조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사회주의국가 학계 내에서 여성주의 발전은 정체된 상태로 있었다. 미국의 여성주의 이론가인 케이트 밀렛(Kate Millett, 1934 - 2017)은 자신의 저서 『성 정치학』(Sexual Politics)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가부장제 철폐에 기여한 혁명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나, 1930년을 기점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이 군사국가화·반혁명분쇄·중공업화라는 명목하에 국가주의 정책을 감행하면서 소련은 가부장제를 회복하게 되었다고 분석하였다. 실례로 스탈린은 1930년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여성 해방 기구인 제노텔(Женотдел)을 폐쇄하였고, 1936년에서 1944년까지 낙태를 금지하였다. 1944년에는 '모성영웅'(Мать-героиня)이라는 상훈 제도를 만들여 여성을 가부장제의 틀에 맞추려는 시도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