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등 (문단 편집) === 사면, 군벌화 === 이후 동탁이 정권을 잡고 황제를 갈아 치우는 등 권력을 휘두르자 관동 지역의 관리들은 일제히 반발해 서로 연합하여 [[반동탁 연합군]]을 일으키는 등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났는데, 이에 동탁은 장안으로 천도하고 마등과 한수를 사면했다. 왕국의 사망 이후 지리멸렬한 상태였지만 아직 세력을 갖추고 군벌을 유지하고 있던 마등과 한수를 회유하여 자신의 지역적 기반인 양주에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지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192년, 동탁은 마등과 한수를 장안으로 불러들여 관동 군벌들을 제압하는 데 참가시키려 했으나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왕윤]]에게 암살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왕윤도 [[이각]], [[곽사]]에게 패하여 다시 정권이 바뀌었고, 이때서야 장안에 도착한 마등은 이들에게 정서장군의 관직을 받고 다시 양주로 돌아가 사례 부풍군 견현, 양주 천수군 농현 사이에 상시 주둔했다. 마등은 얼마 전까진 반란군 수괴의 하나였지만 이각, 곽사가 정권을 잡은 이후 관직의 인플레가 극심했기에 이런 이례적인 초고속 승진이 가능했다. 초평 연간(初平:190-193) 중, 마등은 정동장군(征東將軍)에 임명되었다. 서주(西州)에 곡식이 부족하자 마등은 스스로 표(表)를 올려 군중 사람들에게 곡식이 많이 모자라 지양(池陽-좌빙익 지양현)에서 곡식을 구하려 한다 하고는 장평(長平) 기슭으로 둔(屯)을 옮겼다. 그러자 장수 왕승(王承) 등은 마등이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니 이에 마등의 영(營)을 공격했다. 이때 마등은 가까이 외출하고 대비가 없었으므로 마침내 패주하여 서쪽으로 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