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녀사냥 (문단 편집) ==== 마녀사냥의 경제 ==== 사실 이것은 마녀사냥이 아니라 마녀사'''업'''이었다. 즉 종교의 이름을 팔아 부정한 재산 축적과 정적 제거, 당시 사회에 퍼져있던 다양한 재앙들로 인한 피지배층 불만 다른 곳으로 돌리기, 공포조장을 통한 사회통제강화, 개인적인 원한이나 경쟁자 제거 등을 합법화한 사업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보고 있다. 마녀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이 무죄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이유는, 마녀라고 자백만 하면 규정에 따라 그 사람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기 직전까지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처형된 마녀의 재산은 몰수되어 영주·[[주교]]·[[이단심문관]] 등이 배분하였기 때문에 ‘마녀사냥’은 수지 맞는 장사였다. 뿐만 아니라 체포되어 처형되기까지의 모든 비용도 수감자와 그 집안의 부담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마녀를 감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마녀 감별사들이 돌아다녔다. 마녀 혐의자를 체포하고 마녀재판에 회부한 뒤 재판을 통해 고문을 가해서 자백을 얻어낸 후 화형에 처한다. 그리고 마녀 용의자가 사망하면 최후에는 '''전재산 몰수형'''에 처한다. 결국 애꿎은 사람을 마녀로 몰아서 '''돈 뜯어내려고 [[살인]]'''을 한 것이다. 그래서 마녀사냥이 마녀사'''업'''인 것이다. 당연히 주 타겟은 '''부잣집 과부'''였다. 가족은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엄청나게 많은 돈밖에 없는 나이 많은 여자들이 희생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나마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전재산을 교회에 기부하고 수녀가 되는 것이나 문제는 마녀사냥에서 수녀도 고발되어 죽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경우로는 의사와 성직자가 라이벌 관계였던 산파나 혹은 약초 관련 지식을 알고 있던 자들을 제거하여 수입을 늘리고자 고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사회를 지탱하던 (경험에 기반한) 많은 구전 의료 지식 등이 소실되며 사회를 더욱 암흑으로 몰아넣었다.] 바늘로 찌르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자 가운데는 '찌르면 바늘 끝이 뒤로 밀려나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서[* 아래에서 쓰여있지만 마녀감별법 중 바늘로 찔러보는 방법이 있었다. 아파하지 않거나 피를 흘리지 않으면 마녀로 간주했다.] 많은 마녀를 억지로 만들어 고액의 수입을 올리는 자도 있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마녀사냥은 사람들의 오락물이었다. 인권 의식이 없던 당시에는 공개고문과 공개처형은 재미있는 구경거리였고 고대 로마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이 서로 죽이거나 맹수의 밥이 되는 것을 환호한 로마처럼 사람들은 고문으로 인한 희생자의 고통과 잔인한 처형을 낄낄거리면서 즐기고 환호하는 잔인함을 보여주었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아이러니하게도 공인되기 이전의 기독교도들 또한 고대 로마에 의해 이러한 잔혹한 탄압을 받은 적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공인된 지 1000년은 더 된 시점이니 그 시절 기독교인과 동일시할 순 없지만...] 당시의 인권은 집행인이 미숙하게 목을 자르거나 죽이면 밑의 시민들이 쌍욕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이 당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