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과 (문단 편집) == 역사 == [[청나라]] 초 [[남자]]들이 기마시 장삼 위에 착용하던 보온용 단상의였으나,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부터는 [[팔기군|팔기사병]]만 착용할 수 있었다.[* [[한족]]들에게 [[만주족]]의 의상을 강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족들의 옷이 만주족과 100% 완전히 똑같아지면 한족을 피지배 민족으로 차별하기가 상대적으로 곤란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강희제]](1661-1722) 시기에는 부유한 사람만 착용이 가능한 옷이었으나, [[옹정제]](1722-1735) 이후에는 일반 백성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옹정제]]가 [[만주]] 귀족이나 한족 지주 같은 기득권에게는 [[문자의 옥]]으로 엄히 다스리는 등 여러모로 무자비했으나, 일부 농민들에게 벼슬을 내리기도 하고 지방 백성들에게도 깊은 마음을 쓰는 등 일반 백성들에게는 성군이었음을 감안하면 일종의 기득권 견제책이 아닌가 싶다.] [[순치제]] 치세나 강희제 치세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일반 [[한족]] 백성들이 마과를 입고 나온다면 이는 [[창작물의 반영 오류]]이며, 만약 실제 순치제나 강희제 때의 [[청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간 청나라의 지배민족인 만주족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엄히 다스려졌을 것이다. [[신해혁명]] 이후 대륙 중화민국 시기에는 [[중산복]]과 함께 정장으로 취급되었다. 흔히 근대 [[상하이]]를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인 마과에 [[중절모]] 조합이 이 시기에 주로 입었던 의상이다. 지금 중국에선 전통 마과는 만주족 전통문화 축제나 청나라 배경 사극 촬영을 제외하면 거의 볼 수 없게 되었고 전통 장삼(시지갼)이 [[치파오]]로 개량된 것처럼 마과도 탕좡(唐裝)이란 옷으로 개량되었다. 마과와 비슷하나 장삼 위에 입지 않고 몸통 부분이 대체적으로 더 긴 편. 중국 무술인들이나 중국집 마스코트 인형 등이 입고 있는 옷도 사실 마과가 아니라 탕좡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