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콴유 (문단 편집) === 한국과의 인연 === > 한국인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인의 풍습, 문화, 언어를 말살하려 했지만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한국인은 굳은 결의로 야만적인 압제자에게 항거했다. 일본은 수많은 한국인을 죽였지만 그들의 혼은 결코 꺾지 못했다. >---- >리콴유 자서전(The Singapore story) 中 리콴유는 '식민시절 한국은 강압적 통치를 받았지만 민족적 자긍심이 강한 한국인의 정신을 꺾을 수는 없었다'고 발언했다. 또한 제국주의 시절에는 상당히 드물었던 현상으로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대부분의 피식민지 국가들은 식민주의에 순응하였으나 유독 한국만 끊임없이 저항을 하였다고 평하였다. 1970년대에 한국 정치인들을 만나보니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일본 문화에 익숙한 일본식 엘리트들이었음에도 일본인에 대한 반감과 미움이 어마어마해서 놀랐다라고 한다. 한편 리콴유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일본]]이 싱가포르를 통치했던 방식은 법치주의적이고 젠틀한 [[영국]]과는 달리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어서 학생시절 큰 충격을 받았다고 서술하였다. 일본에게 일본이 중국과 한국, 싱가포르에서 자행했던 잔인한 행위에 대하여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여러번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비유럽국가에서는 유일하게 단결을 잘 하여 선진국으로 성장한 일본에 대한 경외감 또한 동시에 존재한다고 서술하였다. 일본군이 싱가포르 거리를 깨끗이 청소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1994년, 야당시절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태재단 이사장 신분으로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라는 미국의 외교 전문지에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5032301527&d=2015032301527|아시아의 민주화에 대한 글을 기고]] 한 후 리콴유 전 총리가 설한 "[[아시아적 가치]]"를 두고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43685&ref=mobile&cloc=joongang%7Cmnews%7Cpcversion|국내외 저명한 석학들까지 가세해 수년 간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리콴유는 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하는데 반해서 김대중은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강조하였다. 외국에서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권위주의 정치인과 민주화 운동가의 논쟁을 꽤 흥미있게 보았던 모양이다.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asia/1994-03-01/conversation-lee-kuan-yew|A Conversation with Lee Kuan Yew]],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southeast-asia/1994-11-01/culture-destiny-myth-asias-anti-democratic-values|Is Culture Destiny? The Myth of Asia's Anti-Democratic Values]]. 그래도 리콴유 자신은 한국에 꽤 우호적이다. [youtube(kRlUm5ktXNw)] [[대한뉴스]] 1261호 영상. 1979년 10월 16일부터 22일까지 한국을 방문해서 피살당하기 직전의 [[박정희]] 대통령과 정상회담[* 이때 부산에서는 [[부마민주항쟁]]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였다. 이 때문에 국무회의에서도 논란이 있었다.]을 했던 내용도 자서전에서 비중있게 소개했다. 당시 영부인 대행 격으로 통역을 맡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했지만, 자서전에서는 (이름은 따로 적지 않고) 그냥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가 통역을 했다" 정도로만 썼다. 아울러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일화를 인용해 '''공식석상'''에서 견해나 권고를 피력한 경우가 6차례였고, 박정희 대통령 피격 소식을 접한 후 그 '''부재'''가 단순한 지도력 공백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한국이 유무형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 보기도 하였다.[* 실제로 5공화국 출범 '''"직후"''', 한국은 무기 개발 부서를([[백곰|특히 미사일]]) 축소했으며, [[세계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한 협상에서, 1970년대 중공업 육성 정책으로 난립한 자동차, 중공업의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을 강요받았다. 물론 이 구조조정은 유신 말기에도 이미 필요성이 거론되었고 [[김재익]] 경제수석 등이 적극 찬성했던 정책이었던 건 맞다. 하지만,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것과 미국 입김이 강한 외국 금융기관이 잠재적으로 미국과 경쟁하게 될 분야 규모를 줄일 것을 강조하는 건,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현대 [[정주영]] 창업주나 현대자동차 [[정세영|포니 정]] 회장의 자서전에는, 당시 세계은행측이 자금지원을 빌미로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에서 자동차를 포함한 중공업 규모를 축소하려 한 정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미국 [[타임(주간지)|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최고지도자,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일본 총리와 함께 '''‘아시아의 3대 위대한 지도자’'''로 꼽았다. > '''아시아의 3대 지도자'''를 꼽자면 중국의 경제 근대화를 일궈낸 '''덩샤오핑'''(鄧小平)과 일본을 완전한 친미 국가로 자리잡게 하여 일본의 재건을 이끌어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 그리고... '''[[박정희|이 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한국은 [[역사바로세우기]]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안합니다.''' - 리콴유[* 개인적 판단보다는 상대 국가의 정세에 척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엿보인다고 할 수 있는데, 너무 뻔하다보니 도리어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를 조소하는 듯한 멘트로 여겨지기 좋은 주장이라 [[조갑제]] 등이 이 발언을 활용하였다.] [[http://news.donga.com/3/all/20150324/70286474/1|동아일보]] 대체로 개발독재 권위주의적 지도 체제를 좋아하는걸로 보인다. [[덩샤오핑]]과는 냉전 때 만나 중국의 빈농 문맹 출신들이 많이 모인 싱가포르도 경제성장을 해냈으니 중국도 해낼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http://news.donga.com/3/all/20150401/70460141/1|동아일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회고록에 평을 남겼는데, "김대중은 높은 가치를 굳게 지켜낼 줄 아는 사람이며,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강해진 사람이다. 더 높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자제[*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1998년 [[홍콩]]의 성도일보(星島日報)에서 김대중을 평한 내용이 있다. 야당 시절 생명의 고비만 수차례를 넘긴 고초를 겪은 김대중 당선자가 속된 말로 "손볼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상황이었는데도 '''보복 대신 화해와 타협'''을 택한 DJ를 [[장수(삼국지)|장수]]를 용서한 [[조조]]에 비유하면서 "간웅과 노정객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평을 남겼다.]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파일:external/pds.joins.com/NISI20150323_0010746759_web.jpg]] 1999년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전에 키보드 배틀을 벌였어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우호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아시아]]적 특수성"이라는 주장은 학계에도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일례로 매우 유명한 정치학자 중 하나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경우, "[[동양]]의 [[유교]]문화가 민주주의와 조합되기 어렵다는 리콴유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것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동양이 고도의 경제적 번영을 이룬 가운데서도 광범위한 정치참여가 [[부재의 증명|'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비판한 바 있으며, 위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이에 대해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군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크게 진전하고 있음을 주장하며 상술한 보편성을 들어 반론을 하기도 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03251135171|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