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커창 (문단 편집) == 개요 ==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제7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국무원 총리]]. [[2012년]] 제18차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원자바오]]의 뒤를 이어 [[중국 국무원]] 총리로 지명된 사람이었다. [[1955년]] [[7월 1일]]생으로 [[안후이 성]] 출생. [[태자당]]인 [[시진핑]]과 달리 [[후진타오]]가 있던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 출신이며, [[중국공산당]] 및 본인의 학석박 모교인 [[베이징대학]] (북경대; 北京大)에서 많은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애초에 중국은 석박사만 나와도 모교라고 어필하기 쉬운데 학석박을 모두 북경대에서 마쳐 리커창의 입지는 모교에서 대단했다.] 원래 [[후진타오]]의 후임으로 [[중국 주석|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이 될 수 있었지만, [[장쩌민]]의 [[상하이방]]의 격렬한 반대에 밀려 결국 [[태자당]]의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되고 본 인물은 총리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공산당 서열 2위[* [[후진타오]] 주석 시절의 서열 2위는 같은 공청단의 [[원자바오]] 총리였다. 그전 [[장쩌민]] 시절에도 권력 2위는 같은 상하이방이었다. 즉, 특이하게도 시진핑 통치하의 중국만 1위와 2위의 계파가 달랐던 것이다.]로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었다. [[2013년]] [[3월 15일]] 중화인민공화국 [[양회]](两会)[* [[전국인민대표대회]] +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명목상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최고 의결 기관이다.]에서 정식으로 국무원 총리가 되었으며, 10년 임기를 보낸 후 [[2023년]] [[3월 11일]] 후임자 [[리창]]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정계 은퇴 7개월이 지난 2023년 10월 27일, [[상하이]]의 고급호텔 수영장 등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