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영희 (문단 편집) == 평가 == [include(틀:한국 진보진영 관련 문서)] >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 > 리영희, 『우상과 이성』 리영희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기존의 권위주의 독재 정권 시절, 정권의 논점을 조목조목 반박. 한국 현대사에서 왜곡된 국제적 사실들을 밝히는 데 공적을 남겼다. 단적인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에 대해 그는 한국에서 '베트남 전쟁은 이념대립이 아닌 반제국주의 성향이 짙다.'고 최초로 정의내린 인물이었다. 후에도 베트남 전쟁 때의 [[대한민국 국군]]의 과오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기도 했으며 보수정부들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밖에도 단순한 반공논리만이 주입될 뿐 외부 정보가 거의 차단되었던 [[1970년대]]에 세계의 객관적 시각들과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소개하여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매카시즘]]을 조장하는 기존 방송이나 언론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중국]]과 [[일본]]과의 외교문제나 [[미국]]의 동북아 전략 등이 국가의 통제를 넘어 제대로 소개되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하였던 것. 이 때문에 그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1974년]]작)는 당시 많은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책으로 간주되었는데, [[문재인]]이 가장 좋아한 책으로 꼽기도 했다. [[2005년]] [[KBS 1TV]]의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했을 때 문화평론가 [[진중권]]이 같이 출연하여 과거의 자신에게 끼친 리영희 저작의 영향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이른바 [[10월 유신|유신]]시대와 [[대한민국 제5공화국|5공]] 시대 [[운동권]] 대학생들의 '사상의 은사'였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 때문에 보수쪽 이들에게는 당연히 눈 밖에 나버리게 되었고, 이들은 그를 '[[빨갱이]]'[[매카시즘|라는등 인신공격을 맹렬히 퍼부었다.]] 정작 리영희 자신은 [[북한]] 정권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비판을 가했다. 단적인 예로 [[1998년]]에 방북해 고위직 인사들과 회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리영희는 북한의 경직된 체제와 우상화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북의 고위직 인사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비전향 장기수]](비전향 장기수 중에는 [[6.25 전쟁]] 때 학살범들도 많다)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와 문제에 대해서 '북한 당국의 잘못이 매우 크다'고 책임을 강하게 묻기도 했었다. 그러나 반공법으로 잡혀들어갔을 때 도저히 그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할 수가 없었던 것이, 이북 출신이긴 하지만 가족 모두가 한국 전쟁 이전에 남한으로 이주했고 한국 전쟁에 통역장교로 임관하여 전후까지 합쳐 7년 동안이나 직위에 있었던 예비역 소령인데다가, 비록 인사체계의 부실로 인해 없어졌지만 은성무공훈장까지 수여받은 터라 잡아낼 건덕지가 없었다. 결국 재판에서 11심까지 갔으나 1심에서 이미 당시의 정권으로부터 2년형을 때리라고 밀서가 온 터라 감옥에 부당하게 갇히게 되었다.[* 당시 심문한 공안검사의 상식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서울대 법대를 재학중에 사시 패스를 했다고 자화자찬하던 수재 출신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뭔지도 몰라 너무 어이가 없어 누구의 책이라고 말하기도 뻘줌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정치범으로 서대문형무소 독방에서 모친의 부음을 듣게 된다. 이때의 아픔을 바탕으로 <서대문형무소의 기억>에선 일제 시대 재소자들보다 더 열악한 처우를 비판하며 법조인들은 임관 전에 자기 집 냉장고에 하루라도 갇혀보라는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김삼웅]] 독립운동관장이 아직 대상자가 살아있던 시기([[2010년]] [[4월 19일]])부터 쓰던 평전이 있다. 다만 호평이 어느 정도 강한 것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81650&CMPT_CD=SEARCH|감안할 것.]][* 원 링크는 삭제되었으므로 저자의 추도사 링크로 변경] 그는 리영희를 "한국의 [[소크라테스]]"로 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