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버티선 (문단 편집) == 설계와 건조 == 리버티선은 미 해군 해상위원회(United States Maritime Commission)의 설계안을 기초로 했다. 이 설계안은 'EC2-S-C1'라고 불렸다. EC는 비상 수송선(Emergency Cargo), 2는 LWL[* Load Waterline Length 짐을 만재할 때 가라앉은 배의 수면상 길이] 400피트~450피트(=120~140m), S는 스팀 엔진, C1은 설계안 C1이라는 뜻으로, '스팀 엔진, LWL 120~140m인 비상시 수송선 설계안 C1'이 된다. 리버티선을 유명하게 만든 건조 과정은 블록 방식. 선박 전체를 몇 개의 블록으로 분류해서 용골을 올리고 그 위에 블록들을 레고 조립하듯 조립해 나가는 방식으로 기존의 건조 방식에 비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2일에는 자재 절단, 6일째에는 벌크헤드, 10일째는 하부 갑판이 완성되고 14일에는 의장공사가 진행되어 24일째 진수되는 무시무시함을 자랑(?)한다. 그야말로 한 달에 한 척이 찍혀나오는 셈. 최단 기간에 건조된 리버티선은 Roberty E. Peary 호. 공사를 시작해서 선박 진수까지 4일 15시간 30분이 걸렸다. 10,000톤짜리 수송선 1척을 4일 15시간만에 찍어냈으니, 미국의 공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수 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전시체제 하에서 여성들까지 조선공으로 고용했는데, 그렇게 대체된 상당수의 남자 조선공들은 군에 징집되었다. [* 미국의 우월한 전시생산능력을 유지하기위해서 이런 기술직업군들, 특히 숙련된 기술자들에 한해선 병역을 면제해줬으나 조선공들은 알수없다.. 다만 전시생산으로 마구 불어난 리버티 선같은 민간선박이나 큰 전함부터 일개 경비정에 이르는 해군,해안경비대의 함선의 생명(?)관리와 가동율, 신속한 선박수리에 있어서도 조선공의 수요는 급증했을 것이고 군에 입대했을 전직조선공들도 일본과 달리 상당수는 특례를 인정받아 곳곳에 있는 해군 조선소나 전선에 가도 전선 뒤에 있는 전방해역(예를 들면 진주만)의 응급수리도크, 미 육군과 해병의 해안부대같은 지상부대이면서 선박을 운용하는 반쯤은 해군같은 부대나 공작함에 배치되어 특기를 살렸을것으로 추측한다.] SS 패트릭 헨리(SS Partick Henry)의 진수식에는 당시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참석했는데, 이때 그의 연설문에서 '리버티선'이라는 말이 생겼다. 건조비는 대전 당시 약 2백만 달러 가량으로, 보다 먼저 생산되던 평시 생산형 C2형 화물선의 약 338만 달러의 6할 대이나, C2가 평시 15.5 노트, 최대 19노트를 찍었던 것에 비해 11노트라는 월등히 느린 속도에, 그마저도 만재시 10노트대로 떨어지게 된다는 단점을 가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