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덩후이 (문단 편집) ==== 3기: 연임 성공(1996년 - 2000년) ==== [[파일:dwerwer.jpg]] (1996년 5월 총통 취임식에서. 가운데 있는 사람이 리덩후이다, 오른쪽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사람은 부총통 롄잔.) 그 후 1990년대 후반에 대만의 경제 성장이 주춤해지면서 1997년 지방 선거에서 국민당이 민진당에 참패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그 틈을 타서 1998년 입법원 총선과 지방 선거[* 타이베이 시장과 가오슝 시장 선거]에서 국민당이 입법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여소야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예상을 뒤엎고 1998년 총선과 지방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며 그럭저럭 실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를 시작으로 적극적으로 대만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1999년 5월에 <대만의 주장>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중국을 7개의 국가로 분할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쳐 파문을 일으켰고 1999년 7월 '''[[양안관계]]는 (특수한) 국가 대 국가'''라고 발언하면서 그 동안 감춰왔던 본심을 드러냈다. 앞서 말한 1991년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이 발언 역시 어찌보면 [[중화민국]]의 정체성을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비하여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사실상 깨는 발언이라 당시 중국 정부가 격노하여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졌을 정도다. [[장쩌민]] 당시 주석은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사실상 [[양안전쟁|대만 침공 의사를 밝혔다]]. 물론 당시 중국은 아직까지도 군 현대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고 오랜 고도성장과 기술발전으로 인해 그때까지만 해도 체제경쟁에서 우위에 있다고 자신하고 있던 중화민국 군부 측은 중국군이 얼마든지 오든 죄다 용궁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고 장담하는 보고를 올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리덩후이는 한동안 군비 증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군비를 감축하는 한편, 중국의 반발에 오히려 '''"대륙이 대만을 침공해올 경우 [[홍콩]], [[상하이]], [[난징]]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엄포를 놨다.[* 이런 자신만만함은 이후 중국이 대대적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반면 대만은 불황과 중국의 견제로 군비 증강이 사실상 스톱된 상황에서 중국 측에게 일방적으로 상황이 바뀌면서 사라졌다. 중국이 대만을 타격하는게 얼마나 쉬운지는 [[중국군 vs 대만군|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나]] 실질적으로는 대만 또한 만만찮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비례억지전략|중국의 경제 활동이 집중된 동부 대도시에 미사일 세례를 퍼부을 정도의 능력은 있다.]] 어차피 죽을 거 고추가루가 아니라 아예 [[캡사이신]]을 거하게 뿌리고 죽겠다는 얘기. 만약 대만군이 정말로 홍콩이나 상하이에 미사일을 한두 발 정도만 명중시켜버리면 그야말로 중국이 입게 될 타격이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조차 힘들기 때문에 리덩후이의 저 발언은 말이 엄포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2000년 총통 선거에서는 자신의 파벌로 부총통이었던 [[롄잔]](連戰)을 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그러나 이에 강력한 국민당 총통 후보였던 [[쑹추위]]가 반발하여 [[이인제|국민당을 탈당하고 독자적으로 총통 선거에 출마했고]], 이에 따라 국민당 지지층이 분열되어 어부지리로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 후보가 총통에 당선될 수 있었다. 선거과정은 한치 앞도 내다볼수없는 초접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당의 표가 쏭추위에게 더 몰리면서 롄잔은 3위로 접전에 조차 이르지 못하고 낙선했다. 이에 대해서는 리덩후이가 같은 [[대만 독립운동]]주의자인 [[천수이볜]]을 지지했다는 의혹이 있다. 선거 유세 때 인터뷰에서 천수이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무슨 총통이냐" 등의 힐난을 퍼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롄잔을 적극적으로 밀어준 것도 아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직접적으로 언급을 안해서 알 길이 없지만, 1994년에는 황다저우 시장이 민심을 잃은데다 국민당을 탈당한 자오샤오캉까지 신당 후보로 출마한 상황에서 그냥 황시장을 공천해버렸으니 [[천수이볜]]에게 타이베이를 조공한거나 다름없었으며, 2000년에는 타이완의 97%를 차지하는 [[타이완성]]장을 민선으로 지낼만큼 경쟁력이 있는 인물인 쑹추위에게 기회조차 안 주고 그냥 롄잔을 국민당 후보로 내세워서 기어이 국민당 표를 분산시켜 또 천수이볜을 당선시켰다. 그렇게 해서 [[민주진보당]] 등의 [[범록연맹]]이 2004년 총통 선거에서 단독으로도 국민당을 위시한 [[범람연맹]]과 겨룰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이는 불과 10여 년 전의 민주화 초기 시절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국민당 소속인 리덩후이가 사실상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만큼 범록 연맹의 성장에 많은 역할을 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