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류샤오보 (문단 편집) ==== 경과 ==== 2017년 6월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간암 말기로 투병 중이라고. 이후 보도로 암 세포가 전신에 퍼져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교도소에서 정기검진과 적절한 치료를 해주었으며, 가석방 후 치료도 도와주고 있다"]]고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629_0000027186&cID=10101&pID=10100|보도]]했다. 말기 암에 시달릴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고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중국 공산당]]의 제제로 접촉에 제한이 많기에[* 외국 의료진의 외국에서의 치료 제안도 나중에야 전해졌다고 한다.] 정말 적절한 치료와 검진을 받았는지는 의문이다. 류샤오보의 가족 측에서는 "[[독일]]로 출국하여 치료를 받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건강 악화로 장거리 비행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 명목상의 이유. 하지만 중국 당국은 그가 이국 땅에서 사망하면, 중국 내에서 사망할 때보다 훨씬 더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부각될 것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이미 그 전에 출국금지 조치까지 내린 터라... 류샤오보는 자신은 아니더라도 아내가 외국에서 더 자유롭게 살기를 바랬기에, 외국에서 치료를 받으며 아내를 데려가 연금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어했다. 류사오보의 걱정대로 그의 사망에도 아내인 류샤의 출국금지와 가택연금 상태는 풀리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그녀가 새로운 민주화 상징으로 거듭날까 우려하는 것. 류사는 지난해 아버지 사망, 올해 어머니 사망으로 우울증세가 심했고 남편의 죽음에도 가택연금상태여서 많이 쇠약해졌다고 한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15/0200000000AKR20170715046000009.HTML|#]] 정작 [[노벨평화상]]을 준 [[노르웨이]]는 형식적인 논평을 내어,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게 쏟아진 상황이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77792&code=11141500|#]] 결국은 2010년 중국의 [[연어]] [[직권남용|수입 금지]]로 노르웨이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AIIB 가입을 계기로 중국이 조금씩 풀어주었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류샤오보를 옹호하다가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발을 뺐다. 2017년 7월 초, [[미국]]에 망명 중인 반중 민주화 운동가 양젠리(楊建利. 천안문 사태 당시 생존자)가 "류샤오보의 병세가 위중하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배에 복수가 차고, 투약 등의 치료조차 중단할 정도로 악화되었다고. 류샤오보는 현재 랴오닝 성 선양의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며, 병원 측은 "외국 치료를 불허하는 대신 미국과 [[독일]]의 의사를 초빙하는 것은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간 기능 저하로 더 이상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태이며, 가족들은 의료진의 진단 결과를 전해 듣고 밤을 새우며 병상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 뒤로 당국이 가족 면회도 허용했다. 그리고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호흡 곤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2017년 7월 13일 오후 9시(한국시간 10시) 선양에서 다발성 장기 기능 상실로 인해 별세했다. 향년 61세.[[http://v.media.daum.net/v/20170713234149099|#]] 별세 직전 부인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당신은 잘 살아야 하오(好好活下去)"였다고.[[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714_0000041043&cID=10101&pID=10100|#]] 그가 죽은 지 3일 후인 7월 15일, 유해가 화장되어 보하이 만에 뿌려졌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715_0000041814&cID=10101&pID=10100|링크]] 당초 부인 등 친족들은 자택과 가까운 베이징 근교에 묻히길 바랬지만, 그의 묘지가 반체제 인사들의 성지가 될 것을 경계한 중국 당국의 불허로 무산되었다.[* 천안문 사태 당시 시위대에 동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도, 비슷한 이유로 2005년 타계 후 현재까지 묘지 장소가 비공개로 되어 있다.] 대신 생전에 그와 정치적으로 견해를 달리했던 형의 수용으로 화장이 실행됐다. 7월 19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191325001&code=970204|기사]]로 부인인 류샤를 강제 여행 조치를 해서 [[윈난성]][* 류샤오보가 사망한 [[선양시]]과 정반대인 [[베트남]]-[[미얀마]] 접경이다.]에 보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 전통 풍습인 두칠(頭七)[* [[중국어]]로는 "터우치"라고 한다. 망자가 죽은 후 7일째 되는 날 집으로 온다고 믿는 중국 풍습.]마저 못하게 하는 상황이다. 1개월 후인 8월에는 역시 반체제 인사인 작가 양톈수이(楊天水)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이번에도 반체제 인사들을 치료를 제대로 못받게 방치하다가, 의학적으로 가망이 없어지니 선심 쓰듯 병 보석으로 석방시키는 방식으로 제거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7월에 류샤오보의 부인 류사가 자유의 몸이 되어 사실상 독일로 망명하였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07039&ref=A|#]] 이러한 중국 정부의 행동이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에서 미국을 맞서기 위해 유럽연합의 힘을 얻고자 하는 제스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23년 6월에 공식석상에 오랜만에 등장했다.[[https://m.yna.co.kr/view/AKR20230612078200074?section=international/al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