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류샤오보 (문단 편집) == 여담 == >[[공자]]는 정치가들을 찾아다니다가 실패하자 결국 도덕의 교주가 되었다. 그가 스승 되길 좋아하고 스승을 자처했던 것은 거만하고 천박한 인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자는 태평할 때 세상에 나오고 난세에 숨는 처세의 대가였고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다. '''가장 교활하며 가장 실리적이며, 가장 세속적이며 무책임한 정신의 소유자 공자가, 수천 년을 이어 온 [[중화민족]]의 성인이자 모범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위 발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한 [[유교]] 비판론자다. 다만 류샤오보의 이 주장은, 폄훼적인 주장 자체만 나열되어 있을 뿐, 적어도 이 인용문 내에서는 어떠한 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공자는 태평할 때 세상에 나오고 난세에 숨는 처세의 대가였고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다."는 대목은 그냥 틀린 것인데, 이 주장대로라면 공자는 "정치가들을 찾아다니다가 실패"할 일도 없이 그냥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어야 하며, '공자'로 이름이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자는 당시로서는 이미 묫자리 알아 봐도 자연스러운 나이인 50대 중후반부터 중국 천하에 [[인]](仁)을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 하의 중국을 13년 동안 방랑하면서 전란에는 예사로 휘말리고, 광(匡) 땅에서는 포위되어 굶어죽을 위기도 겪었던 사람이다. 이때 공자의 말이 《[[논어]](論語)》〈자한(子罕)〉에 있다: "문왕(文王)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나, 문(文)은 여기 있지 않느냐. 하늘이 장차 이 문을 멸하려 한다면, 뒷날 죽는 사람도 더불어 이 문을 얻지 못하리라. 하늘이 아직 이 문을 멸하려 하지 않는다면, 광(匡) 땅 사람들인들 나를 어찌하겠느냐." 이것이 사실이라면 공자는 굶어죽어가는 와중에도 인문(人文)에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류사오보가 보여준 삶에 대한 태도와 굉장히 닮아 있는 것이다. * 자식이 없는데, 자신의 민주화 운동으로 아이까지 [[연좌제]]에 휘말릴까봐 아예 갖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독재 국가에서는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서 협박, 회유를 하거나 가족에게도 위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 중국 [[바이두]]에 류샤오보를 검색하면 의외로 항목 자체는 있다. 물론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설명은 전혀 없고, 류샤오보가 CIA의 간첩이라는 거짓 내용이 적혀 있다. [[분류:노벨평화상 수상자]][[분류:중화인민공화국의 민주화 운동가]][[분류:평론가]][[분류:중국 남성 작가]][[분류:중국의 학자]][[분류:1955년 출생]][[분류:2017년 사망]][[분류:창춘시 출신 인물]][[분류:간암으로 죽은 인물]][[분류:천안문 6.4 항쟁]][[분류:중국의 인권운동가]][[분류:중국의 정치적 억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