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뤼순커우구 (문단 편집) === 청일전쟁 === 19세기 말 [[청나라]] [[북양함대]]의 기지가 설치되었다가, 1895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점령된다. 이 때 현장을 점령한 일본군 여단장이 훗날 같은 장소에서 곤욕을 치르게 되는 [[노기 마레스케]]. 이 때 뤼순에서는 훗날의 [[난징 대학살 사건]]을 연상케 하는 대학살이 진행되었는데,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으나 그 발단 및 전개과정이 너무나도 비슷하다. 항복 후 민간인으로 변장한 청군 병사들이 저항했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군이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 이것이 도시 전체에서 수일에 걸쳐 진행된 것을 상부에서 무시하거나 반쯤 조장한 것. 이때 현장에서 학살을 목격한 미국인 특파원에게 일본 외교관이 정말로 학살(Massacre)이 있었느냐고 묻자 그 특파원은 학살이 아니라 '''도살(Butchery)'''이었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참혹했다. 최대 희생자는 3만까지 추정할 수 있으나, 일단은 5천 명 내외가 정설이다. [[청일전쟁]] 종전 후 뤼순, [[다롄시|다롄]]을 포함한 요동반도 남단을 일본이 조차(租借)하려 했으나 [[러시아 제국|러시아]]+[[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독일 제국|독일]]의 압력으로 포기하니, 이것이 [[삼국간섭]]이다. 러시아가 일본에 압력을 가한 건 남하정책에 몰두하던 러시아 또한 부동항인 이 곳을 탐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98년에 러시아와 청나라의 비밀 협정에 의거하여 뤼순은 다롄과 함께 [[러시아령 다롄|러시아의 조차지]]가 되어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실질적인 모항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뤼순이야말로 러시아가 태평양에서 얻은 최초의 부동항이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